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에 헌신한 양금덕(96) 할머니에게 ‘대한민국 인권상(국민훈장 모란장)’이 수여됐다. 윤석열 정부의 반대로 서훈이 취소된 이후 3년 만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일 “전날 광주광역시 동구 한 요양병원을 찾아 양 할머니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국민훈장은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되며, 모란장은 국민훈장 다섯 등급 중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다.
양 할머니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별도의 수여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훈장 수여를 기념하기 위해 광주시청 공무원과 시민 등 3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안창호 인권위원장을 대신해 훈장을 전달한 육성철 인권위 광주사무소장은 “2022년부터 추진이 보류된 모란장을 이재명 정부가 나서면서 수여하게 됐다”며 “오랜 기간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받지 못하고 고생 많으셨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는 “이 대통령 덕분에 모란장을 받게 됐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1929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양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근로정신대로 강제징용 피해를 겪었다. 보통학교(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5월 ‘학교를 보내준다’는 일본인 교장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시모노세키행 배를 탔다. 이후 비행기를 만드는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서 1년 5개월을 일했다.
이에 199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첫 소송을 시작했고, 이후 30년 동안 일제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에 힘써 왔다.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018년 11월 원심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고, 미쓰비시 측이 배상에 응하지 않자 2019년 3월 다른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함께 미쓰비시의 국내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에 대한 압류명령을 법원에 신청하기도 했다.
양 할머니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대한민국 인권상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으나 당시 외교부의 반대로 서훈이 취소됐다. 양 할머니에 대한 국민훈장 수여 안건은 3년여가 흐른 지난달 29일 국무회의를 통해 의결됐다. 인권위는 훈장을 수령한 즉시 양 할머니에게 수여했다. 안창호 위원장은 “양 할머니의 귀한 공로에 대한 예우가 적시에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늦게나마 인권을 위한 노고와 공적이 인정받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편 양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온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이날 훈장 수여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정부에 ‘강제동원 제3자변제안’ 철회를 재차 촉구했다. 제3자변제안은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을 대신해 한국 정부가 국내 기업 기부금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시민모임 등 관련 단체들은 이 안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면죄부’를 준다고 비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