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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증세 유혹 버리고 세제 구조부터 개선해야

중앙일보

2025.08.0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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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지난 6년간 누적된 재정수지 적자가 62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경제 둔화가 이어지며 재정 운용은 불가피하게 확장 기조로 전환됐다. 이로 인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당할 손쉬운 수단은 증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조세부담률이 1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한 역대 최악의 상황에서, 새 정부는 첫 세법 개정에서 재정난을 돌파하기 위한 해법으로 증세 기조를 선택한 것이다.

정책 무게중심을 세입 확충으로 기울이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막상 세법 개정의 유력 대상으로 꼽히는 구체적 내용은 실망에 가깝다. 정부 출범 석 달도 못 돼 준비 없이 내놓는 졸속 정책이란 생각마저 든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무위로 끝났기에, 어떠한 형태든 세법개정에서 대안 과세가 나와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결론이 증권거래세를 인상하고 대주주 과세 기준을 확대하는 식의 기존 세제로 복귀라면, 우리나라 조세정책 미래는 참으로 어둡다. 불합리한 과거 세제로의 퇴행에서 얻는 것은 세수 보강이 아니라 시장 왜곡이며, 형평성 대신 표적과세란 비판이 나올 뿐이다. 어렵더라도 금융투자와 관련해서는 보편적인 소득 기반 과세를 확대하는 방향이 자본소득 과세가 취할 길이다.

성장 중시라더니 증세 정책 봇물
감면 축소 통한 세원 확보가 먼저
국제기구도 단순 세수 증대 경계

새 정부가 엄중한 경제 여건마저 외면하고 손쉬운 증세 유혹에 빠져드는 모습은 법인세율 인상에서도 나타난다. 2년 전 103조원까지 늘어났던 법인세수가 62조원으로 줄어든 것은 기업 실적 변동성 때문이다. 지난해 처음 가시화된 3조원가량의 세율인하 효과가 주범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세율 조정으로 마치 세수 흐름이 바뀌기라도 할 듯 호도하는 것은 집권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평상시 1%포인트 세율 변화가 경제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집권당이 갖는 일종의 정책적 옵션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가 출범 두 달여 만에 3년 전에 내린 법인세율부터 다시 올린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국내외 기업과 시장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명확하다. 10~20년을 내다보고 결정하는, 안 그래도 위험성 높은 대규모 투자가 국내에서 활성화되길 기대하기란 어렵다. 정권마다 법인세율이 널을 뛰는데 과감히 투자할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성장 중시 정부를 자처해도 임기 내내 따라다닐 것은 반기업 정서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뿐일 수 있다. 법인세 감면 축소를 통한 세원 확대가 먼저라는 정책의 본분을 지금이라도 지켜야 한다.

주주 친화 정책의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추진한다지만, 배당확대 가능성은 작다. 최종적으로 배당확대분만 저율과세될 것이기에, 유인이 크지 못하다. 현금이 많은 기업은 배당성향이 30%에 가까워 추가 확대 효과는 적다. 반면, 기업이익이 부족해 배당을 못 늘린 다수 기업이 약간의 세제 혜택으로 바뀔 것이란 생각은 순진에 가깝다. 만일, 법인세율 인상을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동시 시행하면, 코스피 5000 달성보다는 주가 하락 가능성이 더 크다. 정반대 조세정책 방향에 시장의 반응은 냉소에 가까울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최근 조세정책의 국제적 흐름은 세제의 구조개선을 통해 점진적으로 세입을 늘려가는 것을 최선의 정책으로 꼽는다. 일회적이고 단편적이며 세수 증대만을 목표로 하는 정책은 국제기구(IMF, OECD)들이 한결같이 경계하는 대상이다. 느린 속도지만 조세제도 구조를 조용히 변화시키며 중산층과 부유층, 기업의 세금 부담을 고르게 늘려가는 영국의 증세정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반면, 부자증세 프레임에 의존해 부유층·기업에서 큰 세수증가를 꾀하겠다는 프랑스의 지난해 대규모 증세정책은 헛된 구호로 그칠 가능성이 점쳐지며,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치부되고 있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대규모 적자를 단기간에 해결하라는 압박을 받던 루마니아 정부가 낮은 소득세 부담은 젖혀두고 갑자기 부가가치세율을 올린 결과는 세수증가만 겨냥한 일회성 증세의 위험성을 웅변한다. 공무원들마저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성을 판단해줘야 할 정도로 정책 수용성을 무시한 결과의 참혹함에서 새 정부 정책수립자들이 교훈을 얻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리셋코리아 경제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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