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이 종막에 접어들었다. 중앙일보는 국내 통상 전문가 5명에게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했거나 진행 중인 주요 7개 나라의 협상 성적을 의뢰한 뒤 학점으로 환산했다.
영국(A-)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과장 출신의 정하늘 국제법질서연구소 대표는 “영국은 미국이 무역질서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한다고 판단하고 빨리 협상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영국과의 무역에서 145억 달러(21조원) 흑자를 보고 있는 점도 한몫했다.
중국(A-)은 관세전쟁이 벌어진 후에도 거의 유일하게 미국과 대등한 협상 구도를 유지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희토류로 반도체·배터리 등 미국 핵심 산업의 약점을 압박했다”며 “자원과 시장 규모 등 전략적 자산을 협상 지렛대로 잘 활용한 케이스”라고 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각각 B+, B0를 받았다. EU는 “반도체·항공기 등 전략 품목에서 무관세를 확보해 핵심 산업을 보호하고 에너지 수입선을 다변화했다”(강인수 교수)는 평가를, 일본은 대규모 펀드로 환심을 사면서도 “영리하게 협상에 임했다”(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는 평가를 받았다.
캐나다(B0)는 트럼프의 직격탄을 맞는 와중에도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무역협정을 지렛대 삼아 타협점을 끌어낸 측면에서 점수를 받았다. 인도(B-)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을 볼모로 협상을 끌고 있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학부 특임교수는 “인도는 원래 협상가로 유명하다”고 했다.
브라질은 7개국 중 가장 박한 평가(C+)를 받았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 싸우다가 50
%
관세를 통보받은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 정부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탄압한다는 이유를 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브라질은 국민이 피해 보는 결정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꼬집었다.
주요국에 들지 못하는 나라들도 트럼프 폭풍에 휘말려 들었다. 스위스는 갑자기 39
%
라는 고율의 상호관세를 통보받았는데,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대통령이 정상 간 통화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자, ‘격노’한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31
%
상호관세를 더 올려버렸다고 한다. 대만 역시 한국과 일본(15
%
)보다 높은 20
%
의 상호관세를 통보받고 충격에 빠졌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100달러에 불과하고 미국과 교역도 많지 않은 라오스는 관세율이 40
%
에 달한다. 첫 상호관세 발표 당시 관세율이 50
%
로 가장 높았던 아프리카의 레소토는 이번에 15
%
로 대폭 줄었다.
세율, 적용 시점, 예외 품목 등 모두 트럼프 마음대로 정했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관세의 정확한 기준을 알지 못한다. 애초부터 관세는 협상 도구일 뿐이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부총장을 지낸 앨런 울프 피터슨국제경제학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AP에 “이번 협상의 진정한 승자는 트럼프”라며 “협박을 통해 다른 나라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다고 내다봤고, 그 전략은 극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