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지위를 잃을 위기에 처한 AI(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발행사들이 여론 반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발행사들은 AI 교과서 지위가 ‘교육자료’로 격하될 경우 활용률은 현재(30%대)보다 더 떨어지고, 약 8000억원 규모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직원 감축과 같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3일 AI 교과서 발행사들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방문해 정책 철회와 제도 재논의를 요구한 가운데 14개 업체들이 돌아가며 국회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에서 교사와 학부모, 출판사 관계자 300여명이 모여 토론회를 열고 지위 유지를 촉구했다. AI 교과서 지위를 변경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잇따라 통과했다. 4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확정된다.
교육 자료로 지위가 확정되면 당장 학생 1인당 월 5000원 가량인 AI 교과서 구독료를 지원 받을 수 없다. 대전의 한 고교 정보 교사는 “2학기에는 구독료 예산을 미리 확보해 사용이 가능하지만 교과서 지위여야만 배정되는 예산이 사라진다면 사용률은 점차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발행사들은 민주당 측에 개정안이 통과가 되더라도 1년 유예 조건을 둬 학교 현장에 체험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정부의 핵심 교육 정책인 AI 교과서는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영어·수학·정보 교과에 전부 도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검증 부족을 이유로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도입하기로 하면서 활용률은 30% 수준에 그쳤다.
특히 코딩 교육과 직접 연관된 중·고교 정보 교과의 경우 교과서 지위를 잃게 되면 공교육 플랫폼 붕괴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하다. 2023년부터 비상교육·미래엔과 함께 AI 교과서를 개발한 엘리스그룹의 김재원 대표는 “10년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코딩 시험을 종이로 치르는 걸 보고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학교는 여전히 그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며 “2023년 챗 GPT 출시 이후 코딩 교육 환경은 더욱 급격히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습용 챗봇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탑재된 클라우드가 함께 운용되어야 하는데 국회에서 이런 기술적인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 한 중학교 정보 교과 교사에게 학원가에서 공개한 중간·기말 고사 문제를 보여주자 “비슷한 형식으로 여전히 평가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시험지에는 코딩 과정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의사결정 과정을 화살표 도표로 보여준 뒤 이에 대한 명령으로 적절한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부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전자 기기를 모두 수거하는 판에 컴퓨터로 시험을 치른다는 건 시기상조”라면서도 “영어 능력 시험 평가인 토플에서 컴퓨터 기반 시험(CBT)를 병행해 실시하는 것처럼 AI 흐름을 따라가려면 일부 시범 도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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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교과서 개발사 “챗GPT·구글에 점령당할 것”
금성출판사와 고교 정보 AI 교과서를 만든 팀모노리스의 엄은상 대표는 “AI 교과서 지위가 참고서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교실에서 플랫폼 기능이 약화돼 그 공백을 코파일럿(CoPilot)이나 챗 GPT, 구글의 제미나이 같은 글로벌 AI 서비스가 빠르게 채울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교사와 학생에게 편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국내 학생 데이터의 해외 유출과 공교육 플랫폼 기반 붕괴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학교 현장에서는 GPT나 제미나이의 빠른 속도나 정보의 다양성 때문에 국내 업체가 따라 잡기가 현실적으로 이미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엄은상 대표는 “공교육에 쓰이는 외국계 AI 플랫폼이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정보 교과를 넘어 외국어와 수학 등 과목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사용료를 점차 올릴 수 있다”며 “책임 있는 활용 기준을 마련하고 국내 업체와 협력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데이터 주권과 공공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