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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산'서 금지된 유대교 공개기도 강행…극우파 장관의 노림수

연합뉴스

2025.08.0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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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전 성전 파괴 기억' 금식일 골라…국내외 '도발' 비판 성지 관리 권한 지닌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사우디 등 규탄성명
'성전산'서 금지된 유대교 공개기도 강행…극우파 장관의 노림수
'2천년 전 성전 파괴 기억' 금식일 골라…국내외 '도발' 비판
성지 관리 권한 지닌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사우디 등 규탄성명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극우파 정치인인 이타마르 벤 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동예루살렘 성지 언덕에서 추종자들을 이끌고 공개 기도회를 강행하면서 국내외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유대교 종교의식이 금지된 곳에서 이스라엘의 현직 장관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주변 아랍권과 국내외 반대자들에 대한 도발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P통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벤 그비르 장관은 3일(현지시간) 알아크사 성지 언덕에서 공개 기도를 했다고 소셜 미디어 X 공식 계정 등을 통해 밝혔다.
이는 충돌 방지를 위해 수십년간 국제적 합의 하에 시행돼 온 이 성지의 관리 방침을 위반한 것이라고 매체들은 설명했다.
이 곳은 약 2천년 전에 파괴된 고대 유다 왕국 야훼 성전이 있던 장소로, 유대교식으로는 '성전산'이라고 불리는 으뜸 성지다.
여기에는 기원전 516년께 지어져 기원후 70년께 로마의 침공으로 파괴된 '제2성전'이 있었던 곳으로, 당시 유대교의 심장부였다.
유대교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 왕 때 건립됐다가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제국의 침공으로 파괴된 '제1성전'도 이 언덕에 있었다.
이 곳은 이슬람교에서도 예언자 무함마드(570년께-632년)가 활동 초기부터 성지로 꼽았던 장소로, 그가 여기서 하늘로 올라갔다가 돌아왔다는 전승이 있다.
이 때문에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는 언덕을 포함한 동예루살렘은 이슬람교에서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3번째로 중요한 성지로 꼽힌다.

기원후 637년에 예루살렘이 무슬림에 의해 점령된 후 이 언덕에 이슬람 모스크가 들어섰으며, 그 후로 지진, 십자군 침공, 전쟁 등으로 파괴되거나 다른 용도의 시설로 전용되기도 했지만 12세기 말부터는 계속 모스크로 쓰여왔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1967년 '6일 전쟁' 때 점령해 군과 경찰을 주둔시키고 있으나,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성지 언덕 등을 관리할 권한은 요르단에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요르단이 이 성지를 관리할 권한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아랍연맹, 미국, 유럽연합(EU), 튀르키예 등도 인정하고 있다.
요르단은 알아크사 성지 언덕에 유대교인이나 그리스도교인이 갈 수는 있으나 이 곳에서 비(非)무슬림 종교의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한 성지 관리규칙을 시행중이다.
이런 규칙은 흔히 '현 상태'(status quo)라고 불린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현직 장관이 '현 상태' 규칙을 어기고 성전산 성지 경내에서 유대교 공개 기도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벤 그비르 장관이 공개 기도회를 연 날짜도 장소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상징성이 있어서 논란이 더욱 뜨겁다.
이 날은 유대교의 연례 금식일인 '티샤 바브'로, 성전산에 있던 제1·2 성전이 파괴된 일 등 유대 민족의 고난을 애통해하고 절치부심하며 기억하는 날이었다.
요르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 주변국들은 그비르 장관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이스라엘 국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좌파 성향 일간지 하아레츠는 그의 행위를 "불에 휘발유를 퍼부은 짓"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치안을 책임지고 경찰을 지휘하는 국가안보장관으로서 '현 상태' 규칙이 준수되도록 할 책무를 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장서서 규칙 위반을 저지르고 선동했다는 게 하아레츠의 지적이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논란이 일자 짤막한 입장문을 내고 "성전산에서 현 상태를 유지한다는 이스라엘의 정책에는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만 49세가 된 벤 그비르 장관은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현재 이스라엘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인의 힘)의 당대표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가한 이스라엘인들의 변론을 맡아 유명해진 그는 2021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2022년에 처음 입각했다.
올해 초에는 가자지구 휴전 추진에 항의해 국가안보장관직을 사임했다가 3월에 똑같은 자리로 재입각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10대 때부터 극우 정치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이 때문에 군복무도 면제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8차례 유죄판결을 받은 전과가 있으며, 그 중에는 인종차별 범죄와 테러집단 지지 범죄 등도 포함돼 있다.
국가안보장관으로서 그는 반정부 시위에 경찰이 강력히 대처하도록 촉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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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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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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