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 서울월드컵경기장. 프리시즌 경기라 부르기엔 너무 벅찬 밤이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2차전, 토트넘과 뉴캐슬의 맞대결은 단순한 친선전이 아니었다. 이날은 손흥민(33)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나서는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
손흥민은 선발로 출전해 후반 18분까지 약 65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리고 마침내 교체 사인이 들어오자, 손흥민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경기장 전체가 숨을 죽였고, 이내 박수와 환호, 눈물로 물들었다. 관중은 일제히 기립했다.
토트넘과 뉴캐슬 선수들은 양쪽으로 늘어서 ‘가드 오브 아너’를 만들었다. 이는 단지 하나의 교체 장면이 아닌, 10년간 함께한 손흥민과 토트넘의 공식적인 작별이었다.
영국 ‘풋볼런던’의 알래스데어 골드는 이 장면을 “믿기 어려운 마지막 교체”라며 SNS를 통해 영상과 함께 전했다. 그는 “경기는 멈췄고, 동료들은 눈물 흘리는 손흥민을 감쌌다. 프랭크 감독은 최고의 작별 무대를 준비했다. 손흥민은 그에 어울리는 퇴장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그라운드를 떠나는 순간까지 손흥민은 레전드였다. 하루 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는 “토트넘에서의 10년은 내 자부심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환경에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며 “영어 한 마디 못하던 소년이 남자가 되어 떠난다. 좋은 시기에 작별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했었다.
이제 팬들의 시선은 그의 새로운 무대에 쏠리고 있다. 손흥민의 행선지는 유럽 명문도, 사우디 자본도 아니었다. 바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소속 LAFC가 그의 다음 팀이다.
미국 축구 전문기자 톰 보거트와 벤 제이콥스는 “손흥민은 LAFC와 모든 조건을 마무리했으며, 토트넘과도 이적료 협상을 끝냈다. 금액은 2600만 달러(한화 약 270억350억 원)로, MLS 역사상 최고 이적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손흥민은 며칠간 한국에 머무른 뒤, 빠르면 다음 주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손흥민의 새로운 챕터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북런던을 넘어 이제는 LA다. 그리고 그가 가는 곳마다 ‘레전드’라는 단어는 따라붙는다. 손흥민, 이름 석 자는 끝까지 빛났다.
한편 같은 길을 걸어봤던 선배도 말을 남겼다. 이영표는 지난 2005년 8월,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하며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다. 당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의 주역으로 유럽 주요 빅리그의 러브콜을 받은 그는, 빠른 스피드와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토트넘의 왼쪽 풀백과 오른쪽 수비를 오가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영표는 2005-2006시즌을 중심으로 활약하며 공식전 92경기를 소화, 아시아 수비수로서 프리미어리그 내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후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며 잉글랜드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직전엔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2012년부터 2시즌을 뛰며 현역 생활을 마쳤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토트넘과 뉴캐슬의 친선전에 앞서 이영표는 후배 손흥민의 작별에 깊은 감회를 전했다. 그는 “저도 토트넘에서 뛰었고, 떠날지를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선수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손흥민이 잘 해낸 것 같다”며 “박수받으며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손흥민에게 모든 팬이 응원을 보내주는 것을 보면, 얼마나 위대한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표는 손흥민의 미국행 소식에 대해서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저도 MLS 무대에서 뛰어봤다. 손흥민이라면 어디서든 통할 선수다. 어떤 리그든지 새로운 도전을 잘 이겨낼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10년 전 토트넘에서 한 시절을 빛낸 선배가, 또 다른 10년을 토트넘에 바친 후배의 마지막을 직접 현장에서 배웅했다. 한 팀, 다른 세대. 그리고 같은 길 위에 선 두 사람의 교차점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