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지난달 29일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양국은 상호 관세율을 15%로 설정했고, 한국이 생산한 자동차는 15%, 철강과 알루미늄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00억 달러(약 27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조선업 협력에 1500억 달러(약 208조원) 투자와 함께 1000억 달러(약 138조5000억원)의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협상 내용을 공개하며 “2주 이내에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정상회담 쟁점은 안보 현안
트럼프, 일방적 주장 가능성
안보·경제 연계 전략 대비를
트럼프가 “완전하고 포괄적인 무역협정(Full and Complete Trade Deal)을 체결했다”고 했지만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당장 합의 내용을 둘러싸고 양국 간 해석 차이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당초 예상했던 안보 관련 사안이 이번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건 불안감을 키우는 부분이다. 관세 협상이 1차였다면 한·미 정상회담까지 안보 문제와 관련한 양측의 치열한 2차 협상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이 국익을 지키기 위해선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과 ‘안보·경제 연계 전략’에 대한 의도를 읽고,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만 안보 협력 문제 미해결 우선,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스타일이 파격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1기 때부터 트럼프 자신의 직관에 따른 즉흥적 결정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외교 관례와 규범, 원칙을 수시로 무시하는 대통령 중심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지난 2월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 도중 “당신은 카드가 없다”며 사실상 내쫓은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는 러시아의 불법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협력해온 노력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트럼프는 서방 국가라도 미국 이해에 부합하지 않으면 비판에 나선다. 학계에서는 이를 ‘트럼프의 개인화된 국제체제’로 정의한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도 양국이 자국 의회를 거쳐 비준한 조약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시했다. 한·미 FTA는 양국이 관세를 사실상 0%로 낮추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은 관세를 올리지 않았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상호관세가 시행되게 됐다.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트럼프는 투자액을 즉석에서 수정하는 ‘쇼’를 연출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국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트럼프 임기 동안 1945년 이후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법치, 다자주의 등 ‘규범 기반 국제질서’가 극적으로 쇠퇴할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다.
한·미 안보협상에서도 이런 트럼프의 태도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부과한 관세는 경제와 안보를 연계해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다목적 정치수단이다. 지난 3월 6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관세는 외교·안보 전략과 연계된 경제 제재 수단”임을 명확히 했다. 특히 미국은 핵심 동맹국을 상대로 미국의 안보 이해를 관세와 연계하는 전략을 폈다. 미국이 우선 협상국으로 지정한 국가 중 합의를 도출한 영국, 필리핀,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여기에 속한다.
안보 측면에서 영국은 미국과 외교 안보 전략의 완벽한 동조 국가여서 이번 관세 협상에 이견이 없었다. EU의 경우 지난 6월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가 단골로 문제 삼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증액키로 하면서 관세 협상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는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GDP의 5%’ 인상에 동의하지 않은 스페인을 향해 “관세를 두 배로 지불하게 만들 것”이라며 안보와 경제를 결부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일본은 트럼프 당선 이후인 지난해 12월 2027 회계연도까지 방위비를 GDP 대비 2%로 증액키로 했다. 나아가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지난 2월 트럼프와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시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보협력을 강조하고 자위대 기능 강화와 미국산 무기 구매를 약속했다.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이해가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필리핀도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빠르게 밀착하고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한 실질적 협력을 강화하며 필리핀에 미 해병대의 이동형 대함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서 정기 해양 활동에도 참여한다.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핵심 동맹국 중 유일하게 안보 협력이 구체화되지 않은 나라가 한국인 것이다.
트럼프의 돌발 행동에 대비해야 한·미동맹은 이미 ‘변환’(變換)하고 있다. 1953년 체결된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시작된 한·미 동맹은 1978년 연합방위체제로 전환하며 진화했으나 현재는 단순 조정이 아닌 근본적 변화 가능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한·미 외교장관은 지난달 31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회담에서 ‘동맹 현대화’를 공식 논의했다. 동맹 현대화의 구체적 정의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미국의 국방전략 수립을 주도하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의 지난달 21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 발언에서 단서가 확인된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한국이 북한 위협에 더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주도권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는 요구다. 미국이 더는 북한 문제에 주된 역할을 맡지 않고 ‘한국 주도, 미국 지원’ 형태로 역할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시작전권 전환과 새로운 한·미 지휘체제 도입 등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콜비는 3월 인사청문회와 2021년 저서 『거부전략』을 통해서도 전작권의 조기 전환을 주장한 바 있다. 미국은 이를 통해 한반도 방어 부담과 비용을 줄이고, 본격적으로 중국 견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한국군 4성 장군이 사령관, 미군 4성 장군이 부사령관을 맡기로 한 ‘미래 연합사’는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퍼싱 원칙(Pershing Principle)’에 따라 미국이 타국 군의 지휘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방비는 이미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지난 5월 말 샹그릴라 안보 대화에서 GDP 대비 5%로 증액할 것을 요구했고, 국내 언론 여러 곳에서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확인했다. 따라서 동맹 현대화에서 미국이 요구할 핵심은 전작권 전환과 국방비 인상이다.
둘째, 콜비는 동맹 현대화에 ‘지역 안보 대비’를 포함시켰다. 콜비가 워싱턴에서 대표적 대중 강경론자이고 지난 3월 말에 미 언론에 공개된 『잠정 국방전략 지침』에서 중국을 “유일한 기준 위협(pacing threat)”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한·미 동맹을 중국 견제에 활용하려는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도 “주한미군의 역할은 북한 격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파격 발언을 한 바 있다. 역대 사령관은 모두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로 국한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이 대중 견제에 동참할지, 한다면 어떤 수준까지 가능할지를 물어올 것이다.
다만 트럼프는 미 국무부 및 국방부와 중국 견제에 대한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 미 국방부는 2027년 중국의 대만침공을 실제 전쟁 준비를 하는 ‘기준 시나리오’로까지 상정해 대비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군사적 수단 사용을 공언한 적이 없다. 대신 트럼프는 대만에 국방비를 10배 증액해 방위 능력을 강화하고 미국에 투자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미 정상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요구가 실무진과 다를 수 있다는 점에 대비해야 한다. 한·미 동맹 관계에서 트럼프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의제는 주한미군 철수, 방위비 부담, 연합 훈련과 전략자산 비용 등이다. 실무 협의 과정에서 한·미 실무자들이 합의를 했더라도 트럼프는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주한 미군도 빼겠다”는 것으로 관세와 동일하게 미국의 비용과 분담을 줄이려 할 것이다. 이런 돌발 상황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합의한 관세 분야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무엇보다 국가 생존이 걸린 안보 의제가 핵심 이슈이기 때문이다. 실용외교를 천명한 이재명 정부가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안보를 지키려면 이런 돌발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하는 묘수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