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사람 목숨을 앗아간 폭 4m, 길이 6m, 깊이 2.5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한 원인이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 공개됐다. 땅 꺼짐 사고를 유발하는 지하매설물을 비롯해 여러 위험 요소가 도사리는 상황에서 주변 공사까지 복합적 원인으로 작용해 인명을 앗아갔다는 내용이다.
국토부, 2014년 “보이지 않는 지하공간 한눈에 확인” 발표
지난해 인명 앗아간 연희동 싱크홀 원인에 지하매설물 포함
부실 하청 경고했으나 인천 지하지도 제작 현장서 2명 숨져
공무원 기피 1순위 된 안전 부서…“지자체에 각서까지 요구”
지난달 서울에서만 해도 강남구, 노원구, 동대문구, 성북구, 중구에서 땅 꺼짐 사고가 발생했다.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로 인근 주민 30여명이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시민을 떨게 하는 땅속 안전 문제는 정부의 과거 약속을 짚어보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11년 전인 2014년 12월 4일 국토교통부 건설안전과는 ‘싱크홀 예방을 위한 지반침하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범정부 민관합동 특별팀이 국내 지반침하를 분석한 결과 지하매설물 파손이나 굴착공사 등 인위적 요인으로 주로 발생한다”고 밝혔다. ‘지반침하 안전대책’으로 ▶보이지 않는 지하 공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지하 공간 3D 통합지도 구축 ▶굴착공사 현장 주변의 안전관리 강화 등을 발표했다.
상수도관 27% 실측도 못 해
서울 서대문구 싱크홀은 지하매설물과 주변 공사가 원인으로 드러났으니 11년 전 국토부의 안전대책이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누수 방지의 관건인 수도 관로 위치 파악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 1일 국토부 관계자에게 문의한 결과 “지금까지 실측을 통해 위치 파악을 완료한 상수도관이 52.3% 정도”라는 답변을 받았다. 상수도관의 절반 정도는 위치조차 모른다는 얘기다. 이 중 20% 정도는 실측했는데도 수도관 탐지를 못 한 ‘불탐 구간’이며 27% 정도는 아직 탐사를 안 한 구간이다. 정부 대책 발표 10년 넘도록 절반이 무방비인 셈이다.
국토부와 서울시 등에 2020년 이후 싱크홀 사고 내용과 싱크홀 관련 대책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서울시는 각 구청에도 정보공개청구를 이송했다. 지자체에 따라 싱크홀 예방 대책 등 답변에 차이가 났다.
서울시와 인천시 등은 지표투과 레이더(GPR)를 이용해 땅 꺼짐 예방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는 “관내 도로를 5개년으로 계획해 도로 하부에 숨겨진 공동을 탐지 및 보수한다”고 밝혔고, 강동구는 “GPR 탐사를 통한 공동조사를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는 “청구된 정보를 생산, 접수하지 않은 경우”라며 정보부존재로 답변했다.
연약 지반 단서 보여줄 항공사진 공개 노후 지하매설물과 함께 연희동 싱크홀의 원인으로 지목된 지질특성과 관련해 중요한 자료가 공개됐다. 성균관대 토목공학과 윤홍식 교수가 확보한 1972년 서울 한강 일대의 항공사진이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수원 성균관대의 윤 교수 연구실을 찾아갔다. 윤 교수가 보관해온 ‘한강 하류부 홍수현황도’엔 1972년 8월 18~19일 홍수가 발생한 서울 한강 주변의 침수 현황을 8월 20일 오후 1시 30분~오후 3시 항공기에서 촬영한 사진이 수록됐다. 서울의 과거 상습 침수 지역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한강 일대를 팔당 지역부터 김포 일대까지 촬영한 대형 사진엔 물에 잠긴 지역이 하얗게 나타나 해당 지역이 상습 침수 위험 지역임을 보여준다.
윤 교수는 “상습 침수 지역은 사질토가 많은데 위에 일반 흙을 덮어서 개발했다”며 “여기에 지하철을 뚫고 상·하수도 관로에 문제가 생기면 사질토로 인해 물이 한쪽으로 몰려서 빠져나가 공간이 생긴다”고 말했다. 사진엔 서울 흑석동과 반포·강남 지역, 잠실 일대가 물에 잠긴 것으로 나왔다. 난지 주변과 목동 등지도 수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 교수는 “이런 지역은 구멍을 깊게 뚫어 토층 분석을 해야 하며 도로 등 굴착을 할 땐 차수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지역에 들어선 아파트나 고층 빌딩과 관련해선 “건물 공사는 지하를 깊게 파고 콘크리트 말뚝을 많이 박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올 들어 강남, 송파 지반침하 많아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발생한 지반침하 72건 중 강남구가 13건으로 가장 많았고 송파구 10건, 강동구 5건 순이었다. 윤 교수가 공개한 항공사진의 수해 지역과 비교해 분석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매년 당국은 싱크홀 대책을 쏟아내지만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3년 전 본지는 지하지도 제작 과정에서 부실 하청업체 문제를 지적했다(중앙일보 2022년 9월 6일자 24면). 지난달 6일 인천에서 맨홀에 들어간 2명이 숨진 사고로 하청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이 투입된 작업은 ‘차집관로 GIS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 관련 업무다. 땅속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인천환경공단이 지난 4월 공고한 ‘사업수행능력 선정자 가격입찰공고’를 보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안전보건관리 준수 서약제 실시’ 등이 명시돼있다. 그러나 안전 관리에 구멍이 났고 경찰은 특히 하청 과정을 수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하 지도 제작에 요구되는 엄격한 전문 자격을 갖춘 기술자가 있었다면 차집 관로에서 이런 작업을 강행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오수가 모이는 차집관로는 지하 관로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다고 분류된다. 여러 오수관이 합쳐져 규모가 크고 밀폐돼 질식이나 익사의 위험이 크다.
지난달 29일 충남의 한 지하지도 제작 업체를 찾아갔다. 사무실 입구에 ‘제한구역’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회의실과 자료실 곳곳에 보안 경고문이 붙었다. 일부 사무실에는 아예 휴대폰 소지가 금지돼 밖에 휴대폰 보관함이 비치됐다. 업체 임원은 “지하 지도는 극도의 보안 사항”이라며 “관련 작업도 자격 요건 등이 엄격히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 맨홀 사고와 관련해 “하수관은 하류로 갈수록 유속이 빨라지고 특히 차집관로는 위험하다”며 “하수관 중에서도 오수관은 밀폐돼 있기 때문에 측량 작업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업체 직원들과 함께 수도 관로의 위치를 찾는 현장을 방문했다. 충남 천안의 한 이면도로에 들어서자 바닥에 통신사·한전·상수도 등 한눈에 10여개의 맨홀이 보인다. 우리가 다니는 길에 얼마나 많은 지하 관로가 있는지 절감했다. 하수도 오수관은 다른 맨홀과 달랐다. 하수도 중 우수관만 해도 맨홀에 구멍이 뚫려있는 데 비해 오수관은 맨홀이 빈틈없이 밀폐돼 있다. 이런 오수관들이 모인 차집관로가 특히 위험하다는 설명에 이해가 갔다.
이 업체가 측정한 상수도관에는 위치를 표시하는 장치가 달려있다. 측정기를 대자 위도·경도가 나온다. 업체 관계자는 “땅속 지반 침하로 위치가 달라지면 파악이 가능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비금속 수도관을 탐지하는 장비를 갖췄다. 땅속 지도상 상수도관 탐지가 안 된 구간에서 장비를 작동시키자 수도관의 위치가 감지됐다. 업체 측은 “아직도 상수도관 상당수의 위치를 모르는 이유가 금속이 아닌 관을 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싱크홀 우려가 커지는데도 비금속 상수도관 탐지가 미흡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땅 꺼짐에 대한 불안은 도처에 퍼져있다. 지난 6월 17일 오후 2시쯤 경기도 용인의 복선전철 공사 현장을 찾아갔다. 항타기가 넘어지며 아파트를 덮친 곳이다. 사고 발생 12일이 지났지만, 항타기는 쓰러진 채 놓여있다. 사고를 당한 동 주민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대피해 생활하고 있었다. 일부 주민은 사고 장소 주변에서 발견한 땅 꺼짐 흔적을 불안하게 생각한다. 정건영 비상대책위원장은 “(항타기가) 몇 시간에 걸쳐 넘어졌는데 확인을 안 한 관리의 문제도 크다”고 주장했다.
“안전 담당자 증원 없이 압박만” 전국 곳곳에서 사고가 속출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강하게 안전에 대한 대비를 주문한다. 그러나 지자체 등에선 지원 없이 압박만 하는 중앙 정부에 불만이 크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인력은 그대로인데 일만 계속 는다”며 “안전 부서는 공무원의 최대 기피부서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행정안전부에서 각서까지 쓰라고 요구했다”며 “누가 안전 업무를 하고 싶겠느냐”고 했다. 행안부 측은 “지난 6월 대통령 말씀에 예방 가능한 사고에 대해선 책임을 묻자고 해서 사인을 받는 행정 절차로 진행이 된 것”이라며 “부단체장까지 대상”이라고 밝혔다. 지자체뿐 아니라 중앙 부처 간부도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국토부는 지난 5월 ‘굴착공사 지하 안전 관리체계 전면 강화’ 정책을 발표했다. “2029년까지 GPR 장비를 30대로 늘려 탐사구간을 5100㎞로 늘린다”는 계획 등이다. 2015년 4월에 발표한 “지하 공간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자료보다 10년 사이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