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관세 쓰나미’에 이어 ‘안보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관세 협상이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관세와 안보 문제를 연계한 포괄적인 접근방법이 언급되기도 했지만, 한·미가 타결한 관세 협상안에는 안보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안보 ‘쓰나미’는 이미 시작했다. 한·미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10~11일 케빈 킴 미 국무부 부차관보가 이끄는 협의팀이 한·미 외교·국방 국장급 실무협의에서 ‘동맹 현대화(Alliance Modernization)’ 계획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서 크리스토퍼 랜다우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7월 18일 도쿄에서 열린 한·미 외교차관 회의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태평양으로 확대 적용하는 ‘동맹 현대화’를 요구했고, 7월 31일 한미 국방장관 첫 통화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 쓰나미’는 곧 열릴 한·미정상회담의 정점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요구하는 ‘동맹 현대화’의 핵심은 그동안 한반도를 대상으로 적용돼온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전문과 제3조는 지역적 범위를 ‘태평양 지역’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한·미동맹은 한반도에서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면, 미국이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개입하는 것으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 유사시 등 태평양 지역에서 미·중이 충돌할 경우 한국도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제기되어온 한반도·역내 안보 이슈들을 고려했을 때 미국이 제안한 ‘동맹 현대화’에는 태평양 지역에서의 집단안보체제 구축, 주한미군의 규모·역할 조정, 한국군의 역할 확대, 국방비·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포함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국방비 증액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합의 사례(직접 국방비 3.5%, 간접 국방비 1.5%)를 참고할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한반도 위기 시 전개되는 전략자산 운용비 일부를 부담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한·미 간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의제로 포함하면 될 수준의 사안이다.
그러나 태평양 지역에서의 집단안보체제 구축, 주한미군의 규모·역할 조정, 한국군의 역할 확대 등은 동맹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것들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태평양 지역에서의 집단안보체제 구축은 동·남중국해와 한반도를 ‘단일 전구(One Theater)’로 묶어 전력을 통합 운용하자는 구상이다. 이 구상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해 중국·러시아·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구체화하는 중이다. 미국·호주·필리핀도 제안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구상은 일본 열도를 중심으로 대만 해협 위협에 중점을 둔 집단안보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으로,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제안이다.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한반도는 방위 우선순위에서 대만 해협에 밀리게 되고, 통합사령부도 일본에 위치할 가능성이 커져, 한반도 방위는 변방으로 전락할 수 있다. 대만 해협과 한반도 위기의 연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만 방어에 중점을 두고 중국을 적으로 상정하는 ‘단일 전구’의 구상은 우리의 안보태세 훼손은 물론 중국과의 갈등도 증폭할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지리적 범위가 태평양 지역을 포괄하지만, ‘중국의 대만 침공’이 곧 ‘미국에 대한 중국의 무력 공격’은 아니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범위에서 벗어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동·남중국해와 한반도는 별도의 전구로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이 집단안보체제 구축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의 규모·역할 조정과 한국군의 역할 확대에 중점을 두고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한미군의 규모 조정은 현재 2만 8500명의 주한미군을 일부 감축하는 것이고, 역할 조정은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해 한반도 방위뿐만 아니라 대만 해협 유사시 등에도 운용을 허용하는 것이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감축보다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협상해야 한다. 이 경우에도 주한미군의 주목적이 한국 방위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한국과의 사전 협의를 제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주한미군의 감축이 불가피하다면 감축은 공군 비행단, 지상군 여단 순으로 협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상군 여단을 후순위로 한 것은 한반도 유사시 공군 전력보다 재전개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상군 여단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미군이 지상군 여단을 한반도에 주둔한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단의 전투임무수행을 위한 지원을 보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미국의 개입을 전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통적으로 미군 계획수립가들은 특정 지역에 미군 지상군 여단의 투입을 곧 미국의 개입으로 간주해왔다.
한국군의 역할 확대는 한반도에서의 역할 확대에 중점을 두고 협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만 해협과 한반도의 위기가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으므로 한국은 북한 도발 대응에 우선을 둘 수밖에 없는 현실을 미국에 설명하고, 한국 방위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협상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군의 역할 확대에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의 포함 여부다. 전작권 전환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고도화하면서 전작권을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개입과 확장억제 제공의 ‘인계철선’으로 인식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규모·역할 조정과 더불어 전작권 전환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안보불안을 증폭할 수 있으므로 극히 신중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꼭 유념해야 할 사항은 ‘동맹 현대화’를 북한이 ‘동맹 약화’로 인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규모·역할 조정이나 전작권 전환은 동맹체제의 본질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므로 한국은 양보에 상응하는 보완책을 미국에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확장억제 제도화의 수준 향상, 미군 전략자산의 가시성 증대, 핵 잠재력 확보 등이 옵션이 될 수 있다. 양보에 상응하는 억제력 강화의 요구로 동맹과 안보를 더욱 튼튼히 하는 ‘동맹 현대화’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