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가속화는 세상을 ‘초연결사회’로 더욱 빠르게 재편한다. 초연결사회는 사람과 사물을 서로 연결시켜 한층 지능화한 네트워크 기반의 상호 소통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혁신의 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이름이다.
인공지능시대 초연결사회의 도처에는 ‘언어적 바벨탑’이 세워지고 있다. 심각한 아이러니다. 초연결사회에서 언어적 혼란의 가중이라니.
바벨(Babel)은 히브리어로 ‘혼돈’을 뜻한다. 창세기 원시역사는 인류가 교만하여 하나님께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인류를 흩으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벨탑(지구라트)은 당대 테크놀로지의 총아라 할 수 있다. 하늘에 닿을 만큼 쌓은 기념비적 건축물은 언어적 혼란으로 결국 무너졌고,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어졌다.
인공지능 기술과 그 미래를 부정하기 위해 바벨탑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이 아니다. 언어적 카오스(chaos)가 가져올 우리 사이의 갈등과, 그러한 갈등 증폭으로 인한 공동체 혼란과 해체를 염려함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미래 사회는 어느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다만 그 영향력에 있어 이전의 산업혁명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 전망할 뿐이다.
문명의 발상지는 문자의 탄생지와 일치하며, 문자 체계가 정비된 시기에 그 나라는 통일되거나 부강했음을 기억하자. 원활한 소통과 역동적 교류를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 문명은 개화할 수 없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가는 네트워크 사회에서 거짓말, 막말, 성희롱, 악담, 언어 폭력, 악성 댓글, 이간질 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차고 넘친다. 이로 인한 우리 사회의 아노미적 상황과 병리적 현상은 갈수록 확산하고 재생산된다.
초연결사회가 낳은 정보나 지식의 불균형은 외려 갈등, 단절, 불통, 불평등을 심화한다. 모든 사람이 대등하게 소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초연결사회는 역설적으로 언어 혼란 가중과 공동체 내부 갈등 증폭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을 담보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세상이다. 거짓이 난무한 곳에서는 모두가 피해자다. 말은 의사표현을 하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진리를 표현하고 문명을 전달한다. 그러나 역으로 말은 인간관계를 악화하고 진리를 왜곡하며 문명을 훼손하기도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그 언어의 집에 인간이 산다.” 20세기 독일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주장이다. 언어는 의사 소통의 수단이고, 이러한 소통에는 어느 정도 일관된 규칙과 약속이 존재한다. 정해진 기준이나 원칙 없이 내키는 대로 언어를 사용하면 의사 소통에 오류와 곡해가 생긴다. 오염된 언어를 재료 삼아 우리 사이에서 부지불식간 세워지는 바벨탑은 우리의 언어적 교류와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가 된다.
교회 공동체 내부의 언어는 얼마나 통일되어 있는가. 공동체 구성원은 신앙 관련 주요 단어들(구원, 믿음, 언약, 은사, 은혜, 중생, 천국 등)의 본래적 의미와 쓰임새를 정확히 인지하여 자기 언어로 풀어 설명할 수 있는가.
구성원이 같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개념의 이해가 서로 다르다면, 한 공동체라 할 수 있는가. 구성원이 신앙 언어를 제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면 내부의 결속과 이웃 신앙 공동체와의 연대는 이미 물 건너갔다.
현재 잘못 사용되고 있는 신앙 언어와 사회적 용어를 바로잡는 일은 시급하다. 대화와 토론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언어적 정의가 제대로 공유되어 유통되지 않을 때에 갈등과 분쟁이 야기된다.
이러한 정의를 무시하거나 자기 식대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 공동체는 명목상의 공동체로 존속하다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정체성이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공동체의 건전성과 지속성을 가늠하는 지표는 그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일관성과 통일성이다.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가장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혼란에서 초래된다. 언어의 혼란이 있는 곳에는 오해, 갈등과 분열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나아가 선이 악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악을 선이라 정당화하기도 한다.
초연결시대의 역설적 현상인 ‘언어적 바벨탑’을 우리 안에서 제거하지 않는 한 미래 사회는 밝지 않다. 공동체 분열과 해체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바르고 정제된 언어 사용이 병든 공동체를 살리는 백신이다. 흐트러지거나 무너진 공동체의 재건은 우리 안의 ‘언어적 바벨탑’을 무너뜨리는 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