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 전문가들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 결과를 놓고 “큰 틀에서의 합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했다는 것이 성과”라면서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만큼 향후 후속 협상에 전략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제프리 쇼트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5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한국경제인협회 주최로 열린 한미 전문가 좌담회에서 “한국의 미국과의 프레임워크 협상 결과는 유럽연합(EU)·일본과 비교해 나쁘지 않았다”며 “한국 측이 집중도 높게 협상 준비를 잘했고, 한미 협력 관계가 잘 뻗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아태 안보의장도 “15% 관세 합의는 단순한 수치가 아닌 전략적 통합의 지렛대”라고 밝혔다.
다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할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이번 협상으로 한국산 자동차는 EU·일본과 같은 15% 관세율을 적용받게 되면서 2012년 한미 FTA 체결에 따른 2.5%포인트 우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됐다. 쇼트 선임연구원은 “기존 FTA를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FTA가 교역 확대에 기여한 기반으로서의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의 연계 등 보다 전략적이고 다변화된 경제 파트너십으로 확장해 나갈 여지가 존재한다”고 짚었다.
국내 전문가들도 비관세 장벽, 방위비, 투자펀드 세부 내용 등 후속 협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무역위원장을 지낸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실질적인 협상은 이제 시작 단계로, 핵심 사안의 해석과 이행 과정에서 우리 측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치밀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네바무역대표부 대사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향후 정상회담 및 문서화 과정을 통해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 안보 관련 추가 논의가 예상되는 만큼 전략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에 대해 양국의 세부 입장이 다른 점을 지적하며 “정부가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확대되면 국내 산업 공동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 투자에 집중하며 국내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규제 완화와 노동유연성 제고 등을 통해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