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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도너번의 마켓 나우] 관세발 물가 상승, 그 서막이 올랐다

중앙일보

2025.08.05 08:06 2025.08.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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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도너번 UBS 수석 이코노미스트
4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이후, 금융시장은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주시했지만, 통계에선 아직 뚜렷한 변화가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관세가 발표될 당시 이미 미국으로 선적 중이던 제품에는 새 관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5~6월 초 미국에 들어온 아시아산 제품 상당수는 이전 관세율을 그대로 적용받았다. 둘째, 관세가 실제 부과되는 항만에서 소비자에게 제품이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평균적으로 공급망을 따라 이동하는 데 약 3개월이 소요된다. 따라서 4월에 발효된 관세의 부담은 일부의 경우 9월이 되어서야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8월 1일부터 적용되는 추가 관세 역시 내년 1월에나 소비자 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미국 소비자물가의 세부 항목에서는 관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가전제품이다. 세탁기와 냉장고 등 주요 품목의 가격은 3월 이후 3.6% 상승했다. 이러한 가격 상승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먼저 글로벌 가전업체들이 미국 수출 제품의 달러 기준 가격을 내리지 않아 관세 부담이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됐다. 또한 미국 제조업체들도 제품 가격을 인상했는데, 이는 수입 철강 등 원자재에도 관세가 부과되면서 생산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동시에 관세로 인해 해외 경쟁사의 제품 가격이 오른 틈을 타 이윤 확대를 노린 전략일 가능성도 있다. 관세의 직접적·간접적 효과가 결합되며 결국 소비자 가격이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에도 미국 소비자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소비자들이 가격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탁기나 냉장고는 매주 사는 생필품이 아니며, 몇 년 전 구매한 가격을 기억하는 이도 드물다.

게다가 민주당 지지 성향의 소비자 중 일부는 관세 시행 전인 올해 초 구매 시점을 앞당기기도 했다. 관세의 부정적 효과를 경고하는 보도가 민주당 성향 언론을 통해 확산되면서 소비 행태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미 구매를 마쳤기 때문에 이후의 가격 인상에 둔감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가전제품에서 시작된 관세 효과는 점차 다른 소비재로 확산될 수 있다. 지금은 미미해 보이는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다양한 분야로 퍼져나갈 경우 미국 소비자들의 불만도 본격화될 수 있다. 현재 가전 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향후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 관세 정책의 여파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폴 도너번 UBS 글로벌 웰스 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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