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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우리가 '내외산소' 가야하냐" 의대생 요구 속내엔…

중앙일보

2025.08.05 08:12 2025.08.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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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선 정책사회부 기자
“의학을 이렇게 배울 수는 없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희의 의술을 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을 공식 발표하자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이 같은 성명을 내고 집단 휴학에 들어갔다. 교육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정원만 늘어나면 의학 교육의 질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의학 교육의 질’을 이유로 학교를 떠났던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은 1년 5개월 만에 종료 수순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30일 이선우 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하고 비대위도 해산을 결정하면서다. 이에 앞서 이선우 위원장은 학교 복귀를 선언하며 기자단 공지를 통해 “개인의 진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학업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왼쪽부터),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 비상대책위원장,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7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한 후 대화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며 노선을 급변경한 의대생들의 속내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한 본과 의대생은 “이 전 위원장은 24·25학번이 함께 수업받는 ‘더블링’ 문제나 본과 3·4학년의 ‘8월 졸업’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탄핵 위기에 몰리면서 사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의대협은 이 전 위원장 사퇴 직후 24학번과 본과 4학년을 위한 별도 협의체 구성을 예고했다.

의대생들이 더블링과 8월 졸업에 민감해 하는 것에 대해 의료계에선 "인기과 진입이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으로 대표되는 인기과의 레지던트 정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먼저 복귀한 학생들보다 졸업을 늦게 하면 ‘인기과 선택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의대생은 “기복귀자와 졸업 시기를 맞추지 않으면 좋은 과를 선점당해 결국 (기피 과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만 남을 것”이라는 ‘방어 논리’를 폈다고 한다.

오랜 필수과 기피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 정부 책임도 없지 않다. 하지만 환자나 동료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사과도 없이 복귀해 인기과만 노리는 일부 의대생들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한 의대 교수는 “돌아와 사회에 필요한 의사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품위와 염치가 없다”며 “이런 태도로는 사회에서 혜택이나 배려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특혜 논란에도 의대생들에게 2학기 복귀와 추가 의사 국가고시 기회를 허용한 건 의사 배출 공백이 길어진 데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의대생의 지위는 의대에 다닌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이 앞으로 지켜야 할 환자에게서 왔다는 뜻이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국민 생명과 안전은 타협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엔 정말 그래야만 한다.



채혜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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