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시 동탄에서 30대 여성이 과거에 연인이었던 30대 남성에게 납치 살해당했다. 비극이 발생하기 전에 이 여성은 헤어진 남성이 자신을 폭행하고 괴롭힌다며 112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폭행 사실을 확인하고도 연인 사이 다툼으로 간주했고, 여성이 “가해자 처벌을 원하지 않고 이미 화해했다”고 진술했다며 현지 종결 처리했다. 이후에도 신고가 들어왔으나 단순 교제 폭력으로 여겼다.
이후 여성은 경찰에 신고하고 폭행 관련 600여쪽의 고소장과 녹취록까지 제출했지만 결국 살해당했고 가해 남성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필자가 경찰서장 재직 경험에 비춰 보면 경찰은 현장에 가해자인 남성이 있었는지, 이 남성 때문에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아닌지를 제대로 확인했나 의문이 든다.
여성 진술만 듣고 추가 확인 안해
지구대와 파출소 인력 부족 심각
서장, 현지종결사건 재확인해야
2012년 경기도 수원에서 ‘오원춘 사건’이 일어난 이후 경찰은 112 신고 사건과 관련해 서울 이외 지역의 경우 경찰서에서 신고받고 출동하던 것을 지방청으로 통합 운영하도록 바꿨다. 중요 사건은 경찰서장이 직접 신고 처리 내용을 확인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을 진행했다. 지방경찰청 112 신고센터장 직급을 총경으로 상향하고, 경찰서 112 책임자도 경정으로 직급을 높였다. 그렇게 하면 112 신고사건 처리가 제대로 된다고 지휘부는 생각했던 것 같지만 지나고 보니 탁상행정임이 드러났다.
치안 일선에서 절감한 것은 112 신고사건 처리를 담당하는 관련 출동 지구대와 파출소의 인력 부족이다. 지구대 경찰관이 부족하면 경찰서 형사 당직팀 등과의 공동 출동이라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112 신고 사건의 등급을 ‘코드 0’, ‘코드 1’ 등으로 나눈 것도 문제가 있다. 신고자의 목소리만 듣고 사건의 등급을 분류할 수 있겠나.
잇따른 강력 사건에서 보듯이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이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잦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하면 이런 유형의 폭력 사건은 현지 종결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가정 내 사건은 경찰력의 ‘민사 관계 불개입 원칙’에 따라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출동 확인 과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진술해 종결하는 경우도 많다. 사건 당시에는 공포감이 들어 신고했으나 막상 경찰 출동 후에는 보복이 두려워 오인신고라고 얼버무리는 경우도 많다. 구속이나 체포 요건이 안 되니 현지 종결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허점을 보완하는 경찰의 노력이 절실하다. 경찰서장은 아침에 형사 당직팀장, 112 신고담당자로부터 보고를 받을 때 현지종결 처리 사건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신고자에게 다시 연락해 경찰이 복귀한 뒤 추가 폭행이 없었는지, 경찰의 종결처리에 만족하는지 한 번만 더 확인해도 비극을 줄일 수 있다.
대부분 112 신고사건은 해당 당직순찰팀과 형사 당직팀 업무로 귀결되고 후임 근무자에게 사건이 제대로 인계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처리가 지연되면서 수사가 제대로 안 된다. 형사 당직 등 경찰서 근무자는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신병과 사건이 인계돼야 조사한다. 현장에 같이 나가서 탐문과 증거수집을 해야 할 사안도 이첩서류에 의존한다.
연인이나 가족 간의 폭행사건이 벌어지면 경찰이 피해자에게 고소장을 제출하라고 얘기하는 경우도 흔하다. 폭행사건은 신고 자체로 인지 수사가 되는데도 이런 관행이 생겼다. 뒤늦게 화성동탄경찰서장이 공개 사과했지만, 대응 체계를 보면 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부터 사과할 일이다. 문제의 본질을 현장에 가서 파악해야 한다. 유가족의 분노를 직접 듣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경찰의 가장 큰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위기에 처한 국민이 112로 신고하면 지구대와 파출소만 출동할 것이 아니라 경찰 본서와 지방경찰청 인력도 과감하게 시민 곁으로 달려가야 한다. 가정 폭력 사건은 이후 전개 상황을 재차 확인해야 한다. 요즘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경찰과 관련한 개혁 방안이 정치권의 화두다. 그러나 국민이 두려울 때 가장 먼저 찾는 경찰은 112 신고사건 처리부터 제대로 혁신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