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좌초 위기다. 닷새 만에 막 내린 안철수 혁신위에 이어 지난달 9일 출범한 윤희숙 혁신위도 혁신안 하나 관철하지 못한 가운데 전당대회(22일)가 다가오며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9월까지인 활동 기간을 못 채우고 막 내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지만 윤희숙 위원장은 “혁신위의 성과는 분명하고, 혁신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여의도 당사 8층 혁신위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전대 전 최대한 혁신’ 약속에 맡았지만
‘나윤장송’ 거취 물었다고 ‘다구리’ 당해
고지도 없이 전대 확정…혁신 뜻 없었다
새 대표, 혁신위 없애도 혁신은 못 없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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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구리’ 당한 이유? 의원 이름 말한 죄”
Q : 지난달 9일 혁신위원장에 취임한 막전막후가 궁금합니다.
A : “안철수 의원이 지난달 7일 혁신위원장을 사퇴한 직후 송원석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이 ‘봅시다’고 연락해 왔어요. ‘날 시키려나 보다’고 알고 갔죠. 송 위원장에게 ‘지금 아무 변화 없이 전당대회 열면 자책골이다. 두서너 달 미루고 먼저 당을 혁신하지 않으면 위원장 안 맡겠다’고 했더니 송 위원장은 ‘전대 연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시간을 주겠다’고 해서 줄다리기 끝에 다음날 ‘먼저 최대한 혁신을 한 뒤 전대를 연다’는 절충이 이뤄졌죠. 나도 크게 양보한 거예요. 그래서 임명된 다음 날인 10일 대국민 사죄문을 당헌·당규에 명기한다는 혁신 1호 안을 만들고 11일엔 당 구조 혁신과 당원소환제 강화 등 혁신 2·3호 안을 만들어 보고했죠. 그야말로 최대한 서두른 거예요.”
Q : 지도부 반응은요?
A : “별 반응 없었어요. 결국은 2주 뒤인 지난달 23일에서야 의원총회에서 혁신안을 설명할 수 있었죠. 그런데 다시 2주가 지난 지금까지 혁신안에 결론을 안 내니, 애당초 ‘선 혁신, 후 전대’ 의 뜻은 없었다고 보이네요. 혁신안 1호인 사죄문도 지난달 25일 ‘문구 수정 중’이란 고지를 받은 지 열흘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요. 이젠 기다린다는 말 하기도 힘든 상황이죠.”
Q : 지난달 13일 ‘당이 사과해야 할 8대 사건’을 지목하면서 논란이 거세졌는데요.
A : “누구는 ‘몇 년 전 일까지 문제 삼느냐’고 하지만, 당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핵심적 사건들이라 지목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한 지인은 ‘(대선 패배) 백서네요’라고 하더군요. ‘박근혜 탄핵의 강’을 건너는 데 5년 걸렸는데 이번엔 계엄이란 엄청난 죄가 연루돼 강 아닌 바다 수준이에요. 당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당연한 조치인데 의원들이 엄청나게 항의했대요. 가장 많이 항의한 사안이 특정인(김기현)을 위한 연판장 사태 및 의원 40여명의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시위였답니다. 게다가 ‘언제까지 사과만 해야 하나’는 반발이 대놓고 나오고 ‘전한길 토론회’ 개최 등 혁신위를 가로막는 사태들이 이어지길래 그 책임이 있는 나·윤·장·송(나경원·윤상현·장동혁·송언석 의원)은 ‘스스로 거취를 밝히라’고 사흘만인 지난달 16일 요구한 거죠.”
Q : 하루 뒤인 지난달 17일 비대위 회의에 들어갔다가 ‘다구리 당했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A : “혁신안에 대해 ‘왜 여기선 이 말, 저기선 저 말 썼나’ 같이 무의미한 지엽 말단적인 지적이 쏟아졌어요. 진지한 논의 대신 비토할 생각으로 무장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게 ‘나·윤·장·송 같이 개별 의원 이름을 언급했다’는 비난이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거였어요. 제가 대충 무난하게 타협할 것이라 여겼는데 의원들 눈높이에 안 맞는 걸 내놔 그랬을 수 있죠.”
Q : 임명권자인 송언석 비대위원장에게도 거취를 요구했는데 본인은 뭐라고 해요?
A : “전한길 토론회 참석 책임을 물어 그런 건데 ‘모르고 갔다. 그게 잘못이냐’고 하길래 변명이 안된다고 했어요. 지금 같은 위기에 당을 이끄는 리더라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런 행사는 금지다. 책임자 징계하겠다’고 했어야죠. 그러지 않은 결과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에 민심과 동떨어진 이들이 여럿 나왔던 거죠. 지도부가 제일 걱정했을 걸요.”
“전당대회 일정, 신문 보고 알아”
Q : ‘다구리’ 사태 다음날인 지난달 18일 국민의힘은 전당대회(8월 22일)를 전격 확정했는데, 송 위원장이 미리 얘기해줬나요?
A : “아니요. 신문 보고 알았죠. 전해 듣기론 내가 ‘다구리’ 당하고 나간 직후 비대위 측이 전당대회 선관위에 ‘전대 일자를 빨리 정하자’고 요청했다고 해요. 혁신위를 조기에 문 닫게 하려고 힘쓴 거라 볼 수밖에 없죠. 그걸 보고 ‘이젠 혁신안의 필요성을 밖에도 얘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 인터뷰에 나선 겁니다.”
Q : 전대에 출마한 김문수 전 장관은 ‘윤희숙 혁신안대로라면 개헌 저지선이 무너진다’고 했는데요.
A : “그분은 ‘중국인 김구’처럼 근거 없는 얘기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요. 당직 사퇴나 3년 뒤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다고 개헌 저지선이 왜 무너지나요. 만약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적 성향이 너무 강해 탈당하는 의원이 있다 해도 그가 민주당발 개헌안에 찬성할까요?”
Q : 윤 전 대통령이 수감까지 됐는데도 국민의힘이 혁신을 못 하는 이유는 뭔가요?
A : “첫째는 당이 아직도 ‘계엄 별것 아니다’는 윤 부부 사고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요. 권력에 줄 서는 정치에 너무 익숙해 윤 부부 그림자에서 아직 못 벗어나는 거예요. 둘째는 ‘우리 편 감싸주기’ 문화예요. 죄가 무거운 동료를 규탄하면 나도 불편하니 보호해준다는 패거리 의식이 워낙 강해요. 민주당도 똑같지만 국민의힘은 그 당과 달리 계엄이란 대죄를 막지 못해 완전히 외면당한 상태잖아요. 합리적 보수는 국민의힘에 아무 관심이 없고 그 빈 마당을 극단적인 유튜버나 종교세력이 메우고 있어요. 이를 혁파하고 일어나는 첫걸음을 혁신위가 뗐다고 봐요.”
Q : 혁신위는 끝난 거 아니냐는 우려가 큰데요.
A : “그렇게 볼 수 있죠. 전당대회가 개시되면 모든 에너지가 거기로 가고, 새 대표가 취임하면 혁신위는 이전 리더(비대위원장) 작품이라 얼마든 무시할 수 있어요. (새 대표가 ‘혁신위 폐기’를 선언하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혁신위를 또 꾸릴 가능성도 높습니다. 어찌 되든 윤희숙 혁신위가 끝난 게 아니에요.”
Q : 왜죠?
A : “혁신위 활동 결과 전당대회가 ‘혁신 대 수구’ ‘(계엄) 반성 대 옹호’의 구도가 됐잖아요. 나·윤·장·송은 계엄을 옹호해도 문제없다고 여겼고 지도부도 그걸 방치했는데 혁신위가 그들의 거취를 공개 요구하면서 이에 동의하는 후보들이 출마한 결과예요. 거취 요구 다음 날 안철수 후보가 날 찾아와 ‘뜻을 같이한다’고 했고 조경태 후보도 혁신에 동의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난 새 대표가 누가 될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누가 대표가 돼도 대세가 된 ‘혁신’이란 화두를 거스르면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서요. 혁신위는 사라져도 혁신은 계속 갈 거예요.”
Q : 친윤은 물론 친한까지 혁신 대상으로 지목한 건 패착이란 지적이 있는데요.
A : “한쪽 계파 몰아내기 위해 무조건 다른 계파에 구애하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그러면 혁신의 방향성·정당성이 훼손됩니다. 윤 부부 전횡을 막지 못하고 계엄·탄핵에서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책임이 친윤에 주로 있다면 계파 싸움에 날 새는 줄 몰라 당이 이 지경까지 추락하게 한 데엔 친한의 책임도 무거워요.”
“의원직 사퇴하자 친윤 동료 고성 항의”
Q : 혁신위에 대한 당원들 반응은요?
A : “강성 지지층의 항의 문자를 많이 받지만 ‘옳은 길 간다’며 지지하는 당원들도 많습니다. 내게 와 공감의 뜻을 표한 의원들도 꽤 있어요. 직접 쓴 사죄문을 보여준 분도 있고요. 초재선이 많지요.”
Q : 민주당 대표에 정청래 의원이 당선됐는데요.
A : “정 대표가 국민의힘에 대화가 아니라 주먹질을 다짐했는데 야당의 극우화를 유도하는 전략이라 봅니다. 한심한 작태지만 그 뻔한 수에 넘어가 투쟁만 외치며 급진화로 흐른다면 국민이 더 외면할 겁니다. 지금은 혁신으로 힘을 키우지 않으면 투쟁 동력도 찾기 어려워요. 이재명 대통령은 하루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다음 날은 기업이 안심하고 일하게 해줘야 한다고 하니 아무리 임기응변 ‘셰셰’라도 진폭이 너무 커요. 워낙 예측불가이니 앞으로 잘해 나가리라고 볼 근거가 없죠. 그러나 그 전에 우리 당이 먼저 혁신해야 하는데 계엄 이후 8개월이나 흘렀음에도 아무 것도 안 바뀌었으니 안타깝죠.”
Q : 의원 부동산 거래 전수 조사 결과 부친이 농지법 위반 의혹을 받자 의원직을 던져 호평받았지만 ‘홀로 잘났냐’는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요.
A : “정치는 철학이 분명한 독립적 정치인들의 연대이지, 레밍 떼처럼 몰려다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임차인입니다’ 연설로 스타가 된 내가 부동산 논란으로 당을 희화화시키면 안 되겠다고 여겨 결단했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재미있었던 일이 기억나네요. (뭡니까?) 국회에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안에서 만난 우리 당 친윤 의원이 ‘당신이 이러면 (조사) 명단에 오른 다른 의원들은 어떡하라는 거냐’고 고성을 지르며 항의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