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더불어민주당이 결국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이 개정안은 정청래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이 처음으로 통과시킨 법안이다. KBS 이사회를 11명에서 15명으로 확대하고, 국회(6명)·시청자위원회(2명)·학계(2명)·변호사단체(2명) 등으로 이사 추천 주체를 다양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민주당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했지만, 국민의힘은 좌파 단체가 공영방송을 장악하도록 만드는 법안이라고 반발했다.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법안인데도 지난달 1일 법안 내용이 발표된 이후 진지한 논의도 없이 군사작전 하듯 한 달여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로 저항해 봤지만, 처리 날짜를 고작 하루 지연시켰을 뿐이다.
민주당은 기업들이 극구 반대하는 노란봉투법·상법개정안도 이달 중에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지난 대선 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 압도적 다수인 국회 의석을 배경으로 1987년 개헌 이후 최강의 정권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뚜껑을 열어 보니 역시 예상대로다. 야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요체다. 이런 식으로 국회에서 민주당의 일당 독주가 이어진다면 의회민주주의는 시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정청래 대표는 어제 취임 인사차 우원식 국회의장을 시작으로 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 등 군소 정당을 예방했는데, 제1 야당인 국민의힘과 보수로 분류되는 개혁신당만 쏙 빼놨다. 원래 여당 대표는 취임 후 제1 야당부터 예방하는 게 오래된 국회의 전통이었는데 완전히 관례를 깼다. 정 대표는 취임 직후 “내란 세력과는 악수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국민의힘을 무시한 거야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내란과 상관이 없는 개혁신당은 왜 배제한 건가. 내란은 명분일 뿐 보수 진영 전체를 배척하는 것 아닌가.
정 대표는 심지어 같은 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야당과 합의한 국회 윤리특위 여야 6 대 6 동수 구성 원칙도 파기할 것을 지시했다. 윤리특위를 여야 동수로 구성하는 것도 국회의 오랜 관례다. 윤리특위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앞으로 민주당이 윤리특위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자신들의 입맛대로 야당 의원 징계안을 처리할 수 있다. 국회 재적 의석 3분의 2 이상이 필요한 의원직 제명은 어렵겠지만, 제명 직전 단계인 ‘출석 30일 정지’와 같은 징계는 민주당이 언제라도 내릴 수 있게 된다. 야당 때 하던 식으로 여당이 국정 운영을 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여당이 다수라고 늘 밀어붙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완급과 강약을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성찰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