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태종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오는 7일(미 동부시간)부터 본격 시행하는 상호관세를 보면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한 고려없이 오로지 자국 이익만 챙겼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해 보인다.
미국우선주의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워온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정책으로 앞세운 '관세'를 이런 구상을 구현하는 도구로만 삼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상호관세율 결정 과정에 동맹국에 대한 고려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한 우대도,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나라에 대한 배려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 "동맹이 적국보다 더 미국을 갈취했다"고 주장했는데, 곧 발효되는 상호관세는 그의 이 같은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행정명령을 통해 69개 경제주체에 대해 새로 적용할 상호관세율을 발표했다.
새 상호관세율은 대미 무역수지, 미국과의 개별적인 협상 타결 여부에 따라 차등적으로 10~41%로 적용됐다고 미국 정부는 설명했다.
지난 4월 발표된 상호관세율이 10~50%였던 것과 비교하면 최고 관세율이 9% 포인트 낮아졌다.
미국의 무역 적자국엔 15% 이상의 고율 관세가 적용됐다.
이 가운데 한국, 유럽연합(EU), 일본처럼 최근 미국과 무역 합의를 체결한 경제주체를 비롯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요르단, 튀르키예, 아프가니스탄과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 등 40개국에는 15%의 관세율이 적용됐다.
26개국에는 15%가 넘는 관세율이 적용됐는데 시리아가 41%로 가장 높고, 라오스·미얀마(각 40%), 스위스(39%), 세르비아·이라크(각 35%), 리비아·알제리·남아공·보스니아(각 30%) 등의 순으로 높았다.
이어 인도·카자흐스탄·몰도바·브루나이·튀니지(각 25%), 대만·베트남·방글라데시·스리랑카(각 20%), 태국·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파키스탄·캄보디아(각 19%), 니카라과(18%)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낮은 10%의 상호관세율이 적용된 나라는 제일 먼저 미국과 무역 합의를 타결한 영국과 브라질, 포틀랜드섬 3곳뿐이다. 브라질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별도의 행정명령에서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40% 포인트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관세율이 50%에 해당한다.
미국 정부는 이번 행정명령에서 공개한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들은 미국의 무역흑자국으로, 10%의 기본관세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무역을 위해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 등 20개국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 중 한국에는 15% 상호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했으며 북미지역 FTA격인 USMCA 협정을 맺은 이웃 나라 멕시코와 캐나다엔 '좀비 마약' 펜타닐 문제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가운데 캐나다엔 35%로 관세를 올리겠다고 압박하는 상황이다.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관세가 부과된 가운데, 미국이 핵심 동맹국에 더 혹독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대표적인 동맹국들인 영국엔 10%, 한국과 일본, EU에는 15%의 관세가 각각 매겨졌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EU에 대해선 관세율을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고 에너지 등 미국산 제품에 대한 대규모 구매를 압박해 관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대니얼 에임스는 뉴욕타임스에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개발업자와 사업가 시절에 답습한 협상 전략을 무역 협상에 활용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의 약점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협상 상대를 흔드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고 한다.
우익 성향 싱크탱크인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소장은 "이건 의심할 여지 없이 일종의 글로벌 강탈(shakedown)"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관세율을 정하는 데 있어 무역 불균형 완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뚜렷한 원칙이나 기준 없이 '고무줄 잣대'를 들이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다수 국가의 관세율이 4월 발표보다 다소 낮아진 가운데, 일부 국가는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 4월 발표돼 50% 관세율로 가장 높았던 아프리카의 레소토는 15%로 크게 줄었고, 캄보디아도 4월 49%에서 이번에 19%로 약 3분의 1 수준이 됐다.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는 19%라는 높은 관세율에도 불구하고 소셜미디어에 "캄보디아 국민과 경제가 계속 발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소식"이라고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을 비롯한 경제 이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관세카드를 활용하고 있다.
브라질에 대해선 상호관세율을 10%로 적용했지만, 별도의 행정명령에서 '쿠데타 모의' 등의 혐의를 받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마녀사냥'이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40%의 관세를 추가로 부여했다.
또 25%의 상호관세율을 발표한 인도에 대해선 러시아 및 이란산 원유 구매를 이유로 관세율을 상당히 올리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이어 러시아에 대해선 오는 8일까지 우크라이나전쟁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물론 러시아와 거래하는 국가들에 대해 100% 넘는 2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한때 145%에 이르는 초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가 '90일간 관세휴전'에 들어간 중국에 대해선 지난달 28-29일 고위급협상을 통해 추가 연장을 추진하기로 잠정 합의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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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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