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부품 업계로부터 들은 얘기다. 한 회사가 드론에 관심이 많다. 쿼드콥터(회전날개가 네 개인 드론) 시제품도 만들었다. 이걸 군에다 납품할까 생각하던 중 고민거리가 생겼다. 드론의 모터에 들어가는 희토류 영구자석 때문이다. 이 회사는 전기자동차 모터도 생산하는데, 희토류 영구자석을 100% 중국에서 수입한다. 이 회사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희토류 영구자석의 99.3%(무역협회)가 중국산이었다. 이 회사 드론이 군용으로 쓰이는 걸 중국 측이 알게 될 경우 희토류 영구자석을 안 팔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론·정밀무기 개발 필수 요소
독점국 중국이 수출 금지하자
미 펜타곤, 채굴업체 인수 나서
한국은 공기업 접근 막혀 있어
미국과 중국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둘의 싸움터는 땅과 하늘, 바다는 물론 해저부터 우주, 사이버 공간까지 구석구석 걸쳐있다. 희토류로도 불똥이 튀었다.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제한한 뒤 군수품 생산이 늦어지고, 서방 방위산업체가 희토류를 찾아 전 세계를 수소문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보도했다.
지난 4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145% 관세를 때리자 중국은 희토류 등 핵심광물 수출을 규제했다. 희토류 공급이 줄면서 서방 기업은 공장 가동을 멈춰야만 했다. 중국은 6월 미국과 ‘관세 휴전’을 맺은 뒤 광물 수출을 재개했다. 그러나 방산용 광물에 대해선 여전히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 희토류 중 사마륨(Sm)은 가격이 60배나 급등했다. 자원이 안보인 세상이다.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수요 폭증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원소는 원자번호 21번(Sc·스칸듐), 39번(Y·이트륨), 그리고 57번(La·란타넘)부터 71번(Lu·루테튬)까지의 17개 금속 원소다. 이들 금속은 형광성·전도성·자기성을 지녔다. 디스플레이·모터·배터리 등의 원료로 주로 쓰인다. 20세기 ‘산업의 쌀’이 철이었다면, 21세기 ‘산업의 비타민’은 희토류다.
희토(希土)라는 이름과 달리 희토류 원소는 희귀하지 않다. 다만 대개 다른 광물과 섞여 있거나, 아주 묽게 퍼져 있다. 그래서 소량의 희토류를 얻으려면 많은 양의 광석이 필요하며, 생산 과정에서 유해 폐기물이 많이 나온다.
사실 미국이 한때 희토류 강국이었다. 냉전 당시 미국은 물량을 앞세운 소련을 정밀유도 무기로 상대하려고 했다. 사마륨은 레이더, 이트륨은 레이저 표적지시기의 성능을 각각 끌어올리는 ‘마법가루’였다. 모하비 사막의 마운틴 패스 광산은 희토류의 최대 공급원이었다.
그러다 중국이 국가 차원에서 희토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92년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며 전략적 가치를 강조했다. 1978~1995년 중국의 희토류 공급이 평균 40%씩 늘어났다. 희토류 가격이 내려가면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희토류 기업은 폐업하거나 생산 라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방은 경제성 저하와 환경 문제 때문에 희토류를 중국에 넘겼다.
중국은 해외 희토류 광산과 기업을 사들이며 영향력을 키웠다. 영구자석 전문의 마그네퀀치(Magnequench)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1995년 중국의 마그네퀀치 인수를 허용했지만, 최소 5년간 미국에서 운영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5년이 지난 지 하루 만에 마그네퀀치 공장은 중국으로 이전됐다. 중국은 희토류 영구자석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다.
중국이 희토류를 독점하다시피 해도 한동안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두 가지 변수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하나는 2007년 1월 9일 애플의 아이폰 출시다. 작고 날씬한 아이폰엔 9종의 희토류가 숨어있다. 애플은 작은 유리 카메라 렌즈의 왜곡을 줄이려고 란타넘을, 소형 스피커의 음질을 향상하려고 네오디뮴(Nd) 자석을, 전기를 덜 쓰면서도 화면에 밝은색을 표현하려고 이트륨과 어븀(Er) 형광체를 각각 사용했다.
중국 선의만 바라는 천수답 신세 2010년 9월 7일 센카쿠(尖閣) 열도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인 선장이 일본 해상보안청에 체포됐다. 중국의 희토류 일본 수출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늦어졌다. 일본은 항의했지만, 중국은 환경 보호를 위한 조처라고 응수했다. 희토류값이 뛰었고, 일부는 수백%까지 올랐다. 결국 일본은 중국인 선장을 석방했다.
희토류 수요는 폭발했지만, 중국은 희토류 공급을 맘대로 죄었다 풀었다 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해지면 그만큼 더 중국의 변덕이 심해지고 있다. 당장 미국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8만개 이상의 부품을 중국산 핵심광물에 기대는 펜타곤(미 국방부)이 급해졌다.
펜타곤은 지난달 최대 희토류 채굴업체인 MP 머티리얼스(MP)의 지분 15%를 인수했다. MP는 마운틴 패스 광산과 희토류 영구 자석 공장을 갖고 있다. 펜타곤은 MP의 희토류에 대해 10년간 현재 시세의 2배 가까운 최저 가격을 보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중국산 희토류 중독’을 끊는 데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최소 20년이란 전망도 있다. 미국은 2017년 중국을 제외한 최대 희토류 기업인 호주 라이너스에 투자했지만, 아직 성과가 미비하다. 일본은 2010년 사태 이후 희토류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는데도 중국 의존도가 아직도 70%(2024년 일본 금속에너지안전기구)다.
희토류 때문에 바깥에선 시끄럽고 안에선 걱정하고 있는데, 정부는 한발 비켜나 있는 듯하다. 물론 희토류 비축량을 늘리고, 국제 협력을 강화하면서, 희토류 사용 저감·대체·재활용 기술 지원을 확대하는 등 대책을 내놨다. 이걸로 부족하다. 해외 희토류 광산을 확보해야만 한다.
2021년 한국광물자원공사가 한국광해관리공단과 합쳐져 생겨난 한국광해광업공단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못 하게 돼 있다. 그래서 전적으로 민간 기업 몫이 됐다. 1997년 베트남의 동파오 희토류 광산을 따냈다가 외환위기로 내놓은 한국이다. 언제 ‘희토류 천수답(天水畓)’ 신세를 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