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1, 2인 가구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1~2㎏의 소포장 쌀 구매 비중은 늘고, 10㎏ 이상의 중대포장 쌀 구매 비중은 줄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쌀을 재배·판매하는 생산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소포장 쌀 판매가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중대포장의 쌀의 판매는 큰 변화가 없어서, 비중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중대포장의 쌀의 판매 비중이 늘었다는 것이다. 현장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쌀 소비는 줄고 햇반 판매 늘어
프리미엄 쌀 수요도 커지는데
쌀 사주는 양곡법이 정답인가
수십 년째 가정 내 쌀 섭취가 꾸준히 줄고 있다는 통계청의 자료는 여러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기업에서 식사용 식품 제조로 사용되는 쌀의 양은 꽤 빠르게 늘고 있다. 통계청의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국내 2864개 식료품 제조업체의 도시락류 제조 및 기타 식사용 가공처리 조리식품 제조에 사용한 쌀은 2023년 18만2천t에서, 2024년 22만t으로 증가했다. 이 중 도시락류 제조에 활용된 쌀은 5만7천t 정도이고, 대부분은 식사용 조리식품 제조에 활용되었다. 햇반으로 대표되는 간편 용기밥이 이 항목에 포함된다.
국내 간편 용기밥 시장은 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내 1위 CJ제일제당의 햇반 매출은 2022년 8150억원에서 2024년 9150억원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소포장 쌀을 주로 구매하던 1, 2인 가구는 이젠 더 이상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고 간편 용기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고 있다. 밥솥이여, 안녕!
또 다른 쌀 가공 및 유통업체에 문의해봤더니 역시 비슷한 답변이 나왔다. 1, 2인 가구가 주로 구매하던 소포장의 쌀 판매가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으며, 그 업체에서 생산하고 있는 냉동 간편밥의 판매는 꾸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더불어 개·고양이 사료의 판매 증가가 압도적이라고 했다.
우리 서울대 푸드비즈 랩에서 농촌진흥청이 10년 넘게 수집하고 있는 수도권 주부 패널들의 식료품 구매 영수증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구매하는 용기밥의 사이즈도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래 용기밥은 200g 이상의 용량으로 출시되었는데 요즘 100g대의 용기밥의 구매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었다. 최근에는 가장 작은 용량인 130g의 용기밥의 판매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향을 보자면 앞으로 100g보다 적은 용기밥이 나올 판이다. 더불어 전남·광주 지역에서 한식 외식업 사장님 50여명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공통적으로 손님들이 공기밥을 다 먹지 않고 남기는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모든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밥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육류를 중심으로 한 다른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밥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치 디저트와 같은 지위로 바뀌어 가고 있는 역사적 변화의 순간을 우리가 목도 중인 것이다. 밥으로 배를 불리는 시대는 이제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큰 흐름을 예견한 쌀 생산자들과 유통업체들은 십수 년 전부터 밥맛이 더 뛰어난 고급 쌀 품종을 재배량을 늘리고, 유명 쌀 생산지의 햇볕과 토양의 특성이 밥맛에 드러나는 특화쌀을 브랜드화하여 판매를 하고 있다. 실제 농촌진흥청의 수도권 주부 패널의 쌀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혼합미’의 구매 비중이 줄고, 특정 품종쌀, 지역 브랜드의 쌀, 즉, 프리미엄 쌀의 구매 비중이 늘고 있었다. 쌀 소비 시장은 조금 더 가격이 나가도 내 입맛에 맞는 쌀을 찾아 먹는, ‘조금 적게, 더 맛있게’의 시장으로 바뀐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고려되고 있는 양곡관리법은 쌀 생산자들의 최저가격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생산자들이 안심하고 쌀 생산에 전념토록 돕고자 하는 배려가 담긴 법이다. 지난 5년간의 최고·최저 가격을 뺀 평균가격으로 수매 가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책 하에서는 현명한 생산자라면 생산량이 많은 품종을 선택하여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 마땅하다.
반면에 고급 특화쌀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지금까지의 쌀 생산 방향을 버리고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품종과 재배법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거나, 프리미엄 쌀 생산을 계속 유지한다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의사결정 상황에 놓인다. 프리미엄 쌀은 대체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비자가 이를 선택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을까?
양곡관리법의 의지는 선하다. 정부의 선한 의지가 혹여 소비 시장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는 산업의 진화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되진 않을지, 다시 한 번만 짚어 보자. 사실은 고령화와 인구절벽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촌에서의 삶의 질과 복지의 문제를 우리가 농업 산업 보조로 풀고자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새 정부가 복지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