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2개 혐의, 8개 사건으로 재판을 5개나 받던 와중에 대통령이 됐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기록이다. 그런데 법원들 역시 사법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이 대통령 취임 두 달도 안 된 기간에 그를 피고인으로 하는 5개 재판을 죄다 연기한 것이다. 헌법상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제84조)이 재판에도 해당하는지 여부는 헌법학계·법조계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또 6·3 대선 당일 방송 3사가 유권자 5190명을 대상으로 한 출구 조사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 돼도 재판은 계속돼야 한다”는 응답이 63.9%에 달했다. 그런데도 법원들은 법리나 여론을 충분히 검토·수렴하는 노력 없이 ‘국정 운영의 연속성 확보’란 논리로 이 대통령 임기 중 재판을 열 뜻이 없다고 선언했다. 정치 권력 앞에 사법부의 권위를 스스로 내려놨다는 논란을 부를 여지가 크다. 대장동 등 여타 사건에서 정진상씨 같은 다른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재판도 중단돼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여당, 대통령 공소취소 추진 논란
오해 부를 만한 정 장관 ‘1호 지시’
법 준수만이 사법 리스크 줄일 길
이 대통령으로선 재임 중 재판을 받는 부담은 덜었지만, 법원 시계 초침이 일시 정지된 것에 불과하다. 선거법 위반 사건은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로 형량 선고만 남겨두고 있고, 대장동·백현동 사건은 김만배·김용·정진상 등 관련자들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대북 송금 사건은 경기지사 시절 직계 수하인 이화영 전 부지사가 징역 7년 8개월을 확정받았다. 이 대통령은 4년 10개월 뒤 퇴임하자마자 연일 법정에 서게 될 수도 있다.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이런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렸는지 더불어민주당은 TF까지 만들어 사법리스크 ‘순삭’을 추진 중이다. 이 대통령이 실질적 유죄 판결을 받은 선거법 사건은 허위사실 공표 혐의의 ‘행위’를 삭제해 면소(免訴)를 추진하고, 대북 송금 사건은 수사 검사들에 대해 ‘조작 기소’ 했다고 맹공해 공소 취소를 끌어내려 하고 있다.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행태들이다.
새 정부의 법무 총책임자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처신이 그래서 중요하다. 정 장관은 장관 지명 전 “(대통령 재판은) 공소취소가 맞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이를 추궁하자 “구체적 사건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해라 하는 것들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은 “법무장관으로서 공소 취소 지휘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지만 ‘구렁이 담 넘기’식의 애매한 발언이란 지적도 나왔다.
게다가 정 장관은 취임 뒤 ‘1호 지시’로 직무 대리 검사의 원대 복귀를 검토하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두산건설 등 기업의 인허가 청탁을 들어주면서 성남FC에 후원금 명목으로 133억5000만원을 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여기 해당한다. 이 사건은 수사를 도맡은 성남지검 정승원 검사가 타청(부산지검)으로 발령 난 뒤에도 직무 대리로 재판을 전담해왔는데, 정 장관의 지시로 그게 불가능해질 공산이 생긴 것이다.
성남 FC나 대장동·백현동 사건처럼 기록이 방대한 사건은 수사를 전담했던 검사가 타 지역으로 전근 가도 해당 재판을 전담해온 것이 수십 년 간 법원과 검찰의 프로세스였다. 사건을 모르는 공판 전담 검사가 대신 재판을 맡으면 피고인이나 증인의 진술 번복에 대처하기 힘들어 공소유지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주가 조작, 다단계 전세 사기 같이 복잡하고 공소 유지가 힘든 민생 사건은 직무 대리가 불허되면 범죄자가 처벌을 피할 수 있어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릴 우려가 커진다. 그런데 정 장관은 유독 이 대통령이 피고인인 사건을 ‘1호’로 점찍어 직무 대리 금지 검토 지시를 했다. 이 대통령 봐주기용 꼼수이자 우회적인 ‘공소취소’ 카드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 충분하다.
법무부는 “정 검사의 직무 대리는 법리상 위법”이란 성남지원의 지적에 따른 조치라고 하지만, 그렇다면 논란의 소지가 없게 관련 법규를 다듬어 수사 검사의 재판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법무부의 도리 아닌가. 검찰에 공소유지 기능만 남기겠다는 정부·여당 입장을 봐도 그게 맞다. 다른 법원들은 모두 직무 대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도 봐야 한다.
정 장관은 친명계 좌장이자 합리적 성향의 인물로 각인돼있다. 이 대통령이 자신의 사법리스크를 비롯해 민감한 사안이 산적한 법무부 수장에 그를 임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정 장관은 자신이 쌓아 올린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친명 아닌 ‘친법’이 돼야 대통령의 사법리스크도 조금이나마 완화될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