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차명 주식 거래 의혹으로 수사 대상이 된 이춘석 의원을 6일 전격 제명했다. 전날 의혹이 불거지자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사퇴하고 자진 탈당 의사를 밝혔지만,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강경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개인 일탈이 아닌 여권 진영 전체의 문제로 키우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춘석 의원을 (당에서) 제명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직전 비공개 최고위에서 이 의원 제명 안건을 의결한 직후였다. 정 대표는 “당규에 따르면 징계를 회피할 목적으로 징계 혐의자가 탈당하는 경우 제명에 해당하는 징계 처분을 결정할 수 있고, (징계 사유 해당 여부는) 탈당한 자에 대해서도 조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명은 당원 자격을 박탈하는 최고 수위 징계다.
정 대표는 “당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이런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정말 송구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사과한 뒤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이재명 대통령 기조대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엄단하겠다”고 했다.
두 시간여 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대통령이 차명 거래와 내부 정보 이용 등 이 의원의 주식 거래 의혹과 관련해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진상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공평무사하게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의혹 첫 보도 뒤 하루가 지나지 않아, 공식적으론 휴가 중인 대통령으로부터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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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이춘석 후임 법사위장에 ‘더 센’ 추미애…야당 “이, 미공개 정보 이용해 조직적 개입 의혹”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이 의원을 국정기획위원회(경제2분과장)에서 즉시 해촉할 것을 지시했다”고도 했다.
이 의원이 지난 4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증권 거래 앱을 통해 주식 거래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 지난 5일 보도되고, 사진 속 계좌 이름이 보좌관 차모씨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차명 거래 의혹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중에도 차씨 명의 주식 계좌를 보는 사진이 찍힌 사실도 재조명됐다. 두 번이나 사진이 찍히고, 이 의원이 그동안 본인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주식(증권)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재산신고를 한 것에 대해 국민의힘은 “상습범”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제기된 당일 밤 이 의원이 자진 탈당 의사를 밝히자 정 대표가 수용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지했던 민주당이 12시간 만에 중징계를 결정한 건 주식 개미 투자자를 비롯한 국민 여론이 더 악화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6일 “‘이재명은 잘하고 있는데 당에서 왜 사고가 나냐’는 지지층 항의가 빗발친다”고 전했다. 민주당 초선 의원도 “대통령이 주식 시장 살리기에 적극 나서는 상황에서 강력한 악영향을 미칠 사건이 터진 게 아니냐”고 했다.
이 의원 사태를 지렛대 삼아 “공석이 된 법사위원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야당의 추가 공세는 ‘더 강한 법사위원장’ 추미애 의원 발탁으로 봉쇄를 시도했다. 최다선(6선)이자 문재인 정부 법무부 장관 출신인 강경파 추 의원을 검찰 개혁 최전방에 배치해 강경 돌파를 택한 것이다.
이 의원 관련 의혹은 이어지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4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부터 논란이 시작된 지난 5일 사이 이 의원이 차명 보유한 의혹을 받고 있는 카카오페이, 네이버, LG CNS의 주가 수익률은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4선인 이 의원이 18·19·20대 국회의원 임기 동안 주식시장 교란 행위자 처벌을 강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모두 네 번 발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AI(인공지능) 국가대표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날 해당 프로젝트 참여 기업의 주식을 사들였다”며 “심각한 이해충돌이며 공직윤리 위반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할 심각한 국기문란”이라고 했다.
네이버와 LG CNS는 전날 과기부가 발표한 ‘국가대표 AI’ 정예팀 5곳에 포함됐고, 향후 정부 지원을 받아 ‘K-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장으로서 AI 정책을 총괄한 이 의원이 AI 정책 수혜주를 사들인 걸 고리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고 형사 고발까지 한 국민의힘은 국정기획위원과 국회의원 전수조사를 요구하는 등 여권 진영 전체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송 위원장은 “이 의원 혼자만 이런 정보를 취득했을 가능성은 낮다”며 “관련 정보를 보고·전달·취급한 인물까지 전체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온갖 완장질과 이해충돌로 얼룩진 국정기획위를 즉각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재산 변동 내역을 등록하게 돼 있는 보좌관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명의를 제공한 이유가 의심된다”며 “보좌관 차씨가 여러 정치인 자산의 저수지 역할을 해 온 것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