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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 데이 애프터눈…도덕적 이분법 아닌 인간 내면의 모순 조명

Los Angeles

2025.08.0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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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파치노 메소드 연기의 정점
아카데미 작품상 등 6개 후보
인질극을 사회 드라마로 승화
영화 ‘도그 데이 애프터눈’의 실제 주인공 존 워즈토윅스는 개봉 직후 이 영화를 관람하고 본질에서 ‘쓰레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알 파치노의 연기만큼은 환상적이었다고 극찬했다. [Warner Bros. Pictures]

영화 ‘도그 데이 애프터눈’의 실제 주인공 존 워즈토윅스는 개봉 직후 이 영화를 관람하고 본질에서 ‘쓰레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알 파치노의 연기만큼은 환상적이었다고 극찬했다. [Warner Bros. Pictures]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사람, 연기 스타일, 캐릭터 구축이라는 면에서 후세대 배우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알 파치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그 데이 애프터눈(Dog Day Afternoon).  
 
그의 연기력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걸작이다.  
 
파치노는 이미 ‘대부’ 시리즈와 ‘서피코’ 등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날 것 그대로의 연기는 메소드 연기의 대표적 배우로서 그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 ‘네트워크’(1976)의 감독 시드니 루멧이 연출, 1975년 개봉한 이 영화는 1972년 8월 22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실제로 일어난 은행 강도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제4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각본상을 받았다. 잭 니콜슨 주연의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오스카상 주요 부문을 휩쓴 해였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절친 존 카제일(사진 왼쪽)은 당시 메릴 스트립의 연인이었다. ‘대부1, 2’에 이은 파치노와의세 번째 만남. ‘디어 헌터’(1978)를 포함, 그가 출연한 4편의 영화가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Warner Bros. Pictures]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절친 존 카제일(사진 왼쪽)은 당시 메릴 스트립의 연인이었다. ‘대부1, 2’에 이은 파치노와의세 번째 만남. ‘디어 헌터’(1978)를 포함, 그가 출연한 4편의 영화가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Warner Bros. Pictures]

무더운 8월의 어느 날 오후, 소니(알 파치노)와 그의 친구 살(존 카제일), 그리고 스티비 3명이 퍼스트 브루클린 저축은행에 침입하려던 중, 스티비가 겁에 질려 도망가버린다. 소니와 살은 계획을 강행하지만, 금고는 이미 텅 비어 있다.
 
경찰이 신속하게 은행을 포위하면서 은행강도 사건은 인질극으로 전환한다. 점점 더 절박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소니는 수많은 뉴스 매체의 카메라와 군중 앞에서 마치 스타 배우가 연기하듯 대처하며 경찰과 협상을 벌인다.  
 
긴박한 대치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신의 트랜스젠더 아내 리온(크리스 사랜든)의 성전환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털기로 했던 소니의 진정한, 그러나 충격적인 동기가 드러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은 소니에게 동정과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군중을 향해 “애티카(Attica), 애티카(Attica)!”를 외치는 소니. 무장강도에 환호하는 군중, 이에 혼란스러워하는 경찰 당국, 탈출을 모색하는 소니와 살.  
 
소니는 국외로 빠져나가기 위해 비행기를 요구한다. 그와 살은 공항으로 가기 위해 인질 한 명을 데리고 리무진에 올라탄다. FBI 요원이 운전하고 JFK 공항 활주로 근처에 당도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FBI 요원이 숨겨 두었던 권총을 꺼내 살을 사살하고 소니는 체포됨으로써 14시간에 걸친 인질극이 막을 내린다.  
 
‘도그 데이 애프터눈’는 범죄자를 선정적으로 다루거나 악마화했던 이전의 범죄 영화와 달리, 주인공의 범행 동기와 그에 얽힌 복잡한 인간 심리를 파고들었다. 소니와 살의 범죄는 치밀하게 계산된 범죄가 아니라, 미숙함과 즉흥성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인질들이 범인에게 공감하고 군중이 그들에게 응원의 함성을 보낸다. 이는 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장면이다.  
 
이들이 기도한 은행 강탈은 허술한 실행으로 인해 곧 인질극으로 전환되며, 사태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이들을 본질에서 악인이라기보다 절박함에 내몰린 평범한 인물로 그려내며, 도덕적 이분법이 아닌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모순을 조명한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범죄 영화들이 범죄자 캐릭터를 심리적으로 묘사하는 데 있어 하나의 서사적 표본으로 활용된다.  
 
영화는 범죄자와 인질 모두에게 가해지는 심리적 압박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다. 도시의 대치 상황을 배경으로 고조되는 긴장감, 혼란스러운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단순한 은행 강도 사건이 언론 윤리와 선정성, 대중의 인식 진정성, 사회 규범, 절박한 상황 속 복잡해지는 인간관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의 연기는 2006년 ‘프리미어’지 선정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 Top 100중 4위에 랭크됐다. 루멧 감독의 영화에 2편 출연했고 2번 모두 오스카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그의 눈빛 연기가 압권이다. [Warner Bros. Pictures]

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의 연기는 2006년 ‘프리미어’지 선정 가장 위대한 퍼포먼스 Top 100중 4위에 랭크됐다. 루멧 감독의 영화에 2편 출연했고 2번 모두 오스카 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그의 눈빛 연기가 압권이다. [Warner Bros. Pictures]

‘도그 데이 애프터눈’은 70년대 미국 사회의 구조적 불안, 미디어 권력의 팽창과 부정적 영향, 그리고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을 반영하며, 이후 사회문화적 담론에서 지속해서 소환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는 은행 강도 사건이 어떻게 급속히 언론의 시선 아래 소비되며 일종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는지를 정밀하게 포착한다. 텔레비전 카메라와 실시간 뉴스 보도는 소니를 의도치 않은 ‘스타’로 부상시키며, 대중 매체의 증폭된 영향력과 그 이면에 자리한 언론의 인권 침해적 성격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시드니 루멧 감독은 거칠고 현장감 넘치는 카메라 워크와 연출로 영화에 다큐멘터리와 같은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혼란과 당황, 긴장이 공존하는 현장 분위기는 영화 전반에 걸쳐 지속하며, 이는 관객이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몰입을 유도한다. 루멧의 이러한 시도는 이후 세대의 감독들에 의해 사실주의 영화 형식의 하나로 자리 잡는다.  
 
1975년 개봉 당시는 성 소수자들이 주류 영화에서 존재감이 없거나 부정적인 역할에 국한되었던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 소니를 동성애자로 그렸고 1970년대 급부상하던 동성애자 인권 운동과 연결했다. 그리고 실제 시스젠더 남성 배우가 트랜스젠더 리온을 연기하는 등 영화가 불러온 성 소수자 이슈는 전례 없는 가시성과 대중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소니는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지녔지만, 영화는 이를 단편적인 특징으로 소비하지 않고, 사랑과 절박함, 내면의 갈등에 의해 복잡하게 움직이는 입체적 인물로 그려낸다. 작품은 소니의 사적인 서사를 점차 사회적, 정치적 층위로 확장해 나가면서 1970년대 게이 해방 운동의 목소리를 미묘하게 반영한다.  
 
‘도그 데이(Dog Day)’는 본래 ‘극심한 무더위가 이어지는 한여름’을 의미하는 숙어인데 ‘도그 데이 애프터눈’이 ‘개 같은 날의 오후’로 직역(오역?)되어 사용됐다.  
 
이후 원래의 의미대로 ‘뜨거운 오후’로 수정되었다. 1995년 이민용 감독은 ‘개 같은 날의 오후’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한여름 무더위 속, 어린아이들의 싸움이 어른들의 갈등으로 번지며 집단 대치, 시위, 군중과 언론의 개입, 그리고 트랜스 여성 캐릭터의 등장 등 ‘도그 데이 애프터눈’과 유사한 사회적 모티프들을 변형하여 차용하고 있다. 잘못된 번역에서 비롯된 제목이 오히려 이 영화에는 어울리는 제목이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

김정 영화 평론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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