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33, LAFC)은 떨리는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시작했다. 2015년 여름, 북런던에 첫발을 내디딘 스물셋의 한국 청년은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 완장을 찼고, 유럽 정상의 무대에서 트로피를 들었다. 그리고 2025년 8월, 그는 정든 구단을 떠나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MLS),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풋볼클럽(LAFC)이다.
손흥민은 토트넘 공식 채널을 통해 공개된 작별 인터뷰에서 복잡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됐다"라고 운을 뗀 그는, "영원한 건 없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많은 팬들이 실망하실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별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다. 좋은 상황에서 떠나는 것이 팀에도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눈물을 참지 못한 손흥민은 "트로피를 너무 늦게 보내드려 죄송했다"라고 전했다. "지난 10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컸고, 그 사랑이 있었기에 더 멀리 달릴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토트넘은 언제나 제 가슴 속에 남을 팀이다. 어디서 뛰든 토트넘을 응원하는 서포터로 남겠다"라고 덧붙였다.
토트넘과의 마지막 인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흥민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7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LA FC는 공식 채널을 통해 손흥민의 영입을 발표하며, 동시에 BMO 스타디움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계약은 MLS의 '지명 선수(Designated Player)' 조항에 따라 체결됐으며, 2027년까지 유효하다. 이후 2029년 6월까지 연장 가능한 옵션이 포함됐다. 구단은 "손흥민은 국제선수 슬롯을 차지하며, P-1 비자 및 국제이적증명서(ITC) 발급 즉시 출전이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장에 선 손흥민은 단호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분명하다.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 위해 왔다. 나는 축구를 하러 이곳에 왔다. 모든 것을 다해 경기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LA FC가 1순위는 아니었다. 손흥민은 "시즌이 끝난 뒤 존 소링턴 단장과 통화를 나눴고, 그 대화를 통해 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가 보여준 비전과 이 도시, 이 팀에 대한 열정이 나를 이끌었다"라고 설명했다.
LA FC 공동 대표인 존 소링턴은 "이번 계약은 9년에 걸친 계획의 결과다. 손흥민은 단지 월드 클래스 플레이어일 뿐 아니라, 팀을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라고 밝혔다.
손흥민은 자신을 향한 기대에 대해 겸손하게 답했다. "유럽에서 잘했다고 해서 이곳에서도 잘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떠날 때 '레전드'로 기억되고 싶다.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LA FC 리드 매니징 오너 베넷 로젠탈은 "손흥민의 존재는 단순한 축구 선수 그 이상이다. 그는 LA 구단뿐 아니라, LA 지역 사회와 전 세계에 영감을 줄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손흥민은 한국인으로서 LA라는 도시가 갖는 의미도 잘 알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는 세계에서 서울 다음으로 가장 큰 한인 커뮤니티가 있는 도시다. 외국에서 뛰며 한인 팬분들을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동기였다"라고 밝혔다.
입단 기자회견에는 LA 시장 캐런 배스와 연방 하원의원 데이브 민, LA 시의원 헤더 헛, 김영환 주 LA 총영사, 로버트 안 LA 한인회장 등 다양한 고위 인사들이 자리해 손흥민의 LAFC 합류를 축하했다. 배스 시장은 "손흥민은 이제 앤절리노(Angelino, LA 시민)다"라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손흥민은 함부르크 SV에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른 이후 레버쿠젠을 거쳐 토트넘에 입성했고, 공식전 454경기 173골 101도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유로파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등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2019년 번리전 단독 드리블 골로 FIFA 푸스카스상을 수상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도 받았다. A매치 역시 13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현재까지 51골 기록 중이다.
이제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유럽에서의 10년은 마무리됐지만, 축구 인생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