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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 여름 가정식, 가지덮밥(茄子蓋飯)의 전설

중앙일보

2025.08.0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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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입맛 떨어졌을 때 손쉽게 뚝딱 먹을 수 있는 중국 음식이 가지덮밥(茄子蓋飯)이다. 중국 가정에서도 여름이면 즐겨 먹는 가정식(家常菜)이다.
가지덮밥 많이 먹는 이유는 가지가 흔한 여름 채소인데다 값도 싸고 요리하기도 쉽기 때문이겠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다.

중국인들, 가지에 대해 묘한 환상 같은 것을 품고 있다. 무의식 속에 가지는 특별한 채소, 먹으면 힘이 솟는 보양 채소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역사 문헌이나 속담, 민간 속설에 그 흔적이 보인다.

중국에는 가지메기찜에 노인네 배불러 죽는다(鮎魚炖茄子 撑死老爷子)라는 속담이 있다. 나이 먹으면 아무래도 식욕이 떨어지는데 가지메기찜이 집나간 입맛을 되살릴 정도로 맛있다는 소리인 동시에 가지와 메기가 그만큼 몸에 좋다는 말도 된다. 다만 중국에서는 가지에 보다 방점을 찍는 것 같다.

이를테면 중국 고전소설 『홍루몽』은 청나라 때의 사회 문화 풍속이 잘 반영되어 있는 소설로 꼽힌다. 여기에서는 가지를 초별갑(草鱉甲)이라고 했다. 별갑(鱉甲)은 자라, 초(草)는 풀이니 풀로 된 자라라는 뜻이다. 자라는 중국 사람들이 최고 보양식으로 꼽는 강장식품이다. 그러니 초별갑이라는 별명은 가지가 채소 중에서는 자라에 버금가는 식물성 보양식품이라는 의미다.
가지를 여름 보양식으로 꼽는 데는 나름 근거도 있다. 명나라 말 의학서인 『본초강목』에 가지는 성질이 차다(冷)고 나온다. 그렇기에 여름에 먹으면 더위를 식힐 수 있어 몸에 좋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가지에 대해 품었던 환상은 역사가 깊다. 8세기 당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습유』’에서는 가지의 별명을 낙소(落蘇)라고 하고 곤륜과(崑崙瓜)라고도 했다. 이 별명에서 당시 가지를 얼마나 특별한 채소로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낙소는 떨어질 낙(落), 깨달을 소(蘇)자를 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떨어지고 깨닫는다는 말이니 어떤 의미인지 짐작조차 어렵다. 하지만 실은 가지의 맛이 낙소(酪酥)와 비슷하기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이때의 낙소는 젖 낙(酪)자와 연유 소(酥)자를 쓰는데 우유와 연유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치즈나 버터를 일컫는 말이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옛날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임금님도 함부로 먹을 수가 없어서 약으로 쓰거나 임금이 나이 든 신하에게 특별히 하사품으로 내렸을 정도의 귀중품이었다.

가지를 낙소라고 한 본초습유는 당나라 때 나온 의학서다. 이 무렵 당은 서역과의 활발한 교류로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중앙아시아의 문화인 호풍(胡風)이 유행할 때였다.
실크로드를 오가는 서역의 상인을 통해 들어온 치즈와 버터는 유목을 하지 않는 중국 한족에게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음식으로 왕과 귀족들만이 맛볼 수 있는 귀중한 식품이었다. 그런만큼 당시 사람들이 가지를 치즈 맛에 비유한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은 가지 맛에서 이국적이고 독특한 풍미를 느꼈던 것 같다.

가지의 또 다른 별명인 곤륜과에도 환상이 반영되어 있다. 곤륜과는 풀이하면 곤륜산에서 나는 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곤륜산은 실제 존재하는 지명이 아니라 신선들이 모여 산다는 곳이다. 그러니 곤륜산에서 자라는 오이는 곧 신선들이 먹는 채소라는 의미로 가지를 신선이 먹는 식품으로 여겼던 것이다. 곤륜과라는 이름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곤륜산은 실존하지 않는 산이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서쪽인 티베트와 청해성 사이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곤륜과는 가지가 서쪽에서 온 채소라는 의미도 포함된 별칭이다.
이런 채소였던 만큼 옛날 중국에서는 가지를 소중하게 다뤘는데 그 흔적이 6세기 무렵 북위의 태수 가사협이 썼다는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보인다. 가지를 자를 때는 뼈로 만든 칼(骨刀)이나 대나무 칼(竹刀)로 잘라야지 쇠로 만든 칼로 자르면 가지의 절단면이 검게 변색한다고 적혀 있다.

고도의 심미적 요리법일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보면 가지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정성껏 손질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가지가 그만큼 귀한 채소, 맛있고 값나가는 수입채소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가지를 왜 이렇게 귀하게 여겼을까? 가지는 인도가 원산지로 옛날에는 높은 산과 사막을 넘어 어렵게 중국에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가지는 옛날 아랍과 지중해에서도 고급 채소로 대접받았다. 주로 귀족들의 요리로 전파됐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대부분 음식이 그렇지만 가지 덮밥도 알고 보니 보통 음식이 아니었다.

윤덕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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