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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서울대 공대 신입생 "의대 반수 고민"…입학 뒤 휴학, 올해 184명 [AI 시대, 이공계가 미래다]

중앙일보

2025.08.07 13:00 2025.08.07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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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서울대 정문. 뉴스1

새 학기 시작 전인 지난 2월, 서울대생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자신을 공대 신입생으로 소개한 A씨가 “반수를 고민 중”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요즘 취업난이 심각하다는데 서울대 졸업생도 대기업 취업이 어렵냐”고 물었다. 이어 “공대는 미래가 불확실하고 ‘취준’에 목매야 한다는 점 때문에, 부모님도 의대 쪽으로 반수를 권유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대 신입생 중 180여명이 입학 한 학기도 채 지나지 않아 휴학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A씨와 같은 이공계 학생이었다. 교육계에서는 이들 대다수가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의대 쏠림’과 ‘이공계 엑소더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7일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 신입생 중 휴학생은 총 184명이다. 서울대 신입생 전체(2025학번·3789명)의 4.9%에 이른다. 서울대는 연세·고려대 등 다른 대학과 달리 신입생도 1학기 휴학이 가능하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들 휴학생 중 76.1%(140명·의대 제외)는 공과대학(60명 휴학), 농업생명과학대학(32명), 자연과학대(15명) 등 주로 자연계 수험생이 지원하는 학과가 중심인 8개 단과대학에서 나왔다. 학과별로 보면 신입생 휴학 비율은 응용생물화학부(18.2%), 식품동물생명공학부(16.3%), 간호학과(15.2%) 순으로 높았다. 대조적으로 경영학과·정치외교학부·미술대 등 인문·예체능계 수험생이 지원하는 38개 학과·학부에선 휴학생이 없었다.

교육계에선 1학년 1학기 휴학을 택한 서울대 이공계열 학생 대다수가 의대 진학을 위한 재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정확한 사유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입결(입시결과)’로만 보면 의대 지원이 가능한 최상위권 학생들”이라고 했다. 관련 학과의 한 조교는 “휴학 사유로 대부분 ‘개인 사정’을 적지만 사실 대부분 재수를 준비하려는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김영옥 기자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들도 이어진다. 교육부가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이공계열 학생 중 자퇴 등 중도탈락자는 1337명으로, 전년보다 136명 늘었다. 학교별로는 고려대 580명, 연세대 458명, 서울대 299명 순으로 많았다. 김원중 대성학원 입시전략실장은 “학원에 오는 ‘SKY(서울·고려·연세대)’ 자연계 학생 거의 100%가 의대 진학 등 학과 상향을 염두에 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다수 학생에게 영향을 준다. 연세대 24학번 B씨는 “고등학교 때까진 공학자가 꿈이었지만, 입학 후 선배들 통해 ‘남아봤자 손해’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전했다. 고려대에 재학 중인 C씨도 “의대 정원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 속으로 ‘다시 도전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곤 했다”고 했다.
박경민 기자

강경숙 의원은 “당분간 의대가 모든 분야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 인적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오고, 이공계 인재 확보가 어려워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이공계 인재 양성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의대 증원 발표 당시 이공계 지원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보람.이후연.최민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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