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J.M.윌리엄 터너는 '눈보라'(1842년 작)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 중에는 이 작품과 닮은 듯 다른 '노예선'(1840년 작)이 있다.
터너의 노예선 작품을 얼핏 보면 저녁노을에 물든 장엄한 바다 풍경을 묘사한 듯 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도 속에 버려진 사람들의 손과 족쇄가 채워진 발, 마치 먹잇감을 만난 듯한 갈매기와 물고기 떼가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으스스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터너가 1781년 종(Zong)호라는 노예선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기록을 읽고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노예선 종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붙잡힌 원주민 442명을 가득 태운 종호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항해하던 중 목적지인 자메이카를 한참 지나쳤다.
뒤늦게 실수를 알아챈 선장과 선원들은 식수 부족을 걱정한 나머지 노예들을 바다에 던지기로 뜻을 모으고 실행에 옮겼다. 수일에 걸쳐 수장된 노예 수는 133명으로 전해졌다.
이런 '종호 학살'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 선주가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영국 법원은 비가 내려 식수가 부족하지 않은데도 선원들이 노예들을 계속 바다에 던졌다는 점에서 '고의적인 화물파손'이라고 보고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노예는 일반화물과 다를 바 없다는 전제가 깔린 판결이었다.
노예로 잡힌 아프리카 원주민은 종호와 같은 비극이 아니더라도 비좁고 비위생적인 노예선 공간에서 수갑과 족쇄를 찬 채 기나긴 항해를 견뎌야 했다. 설령 항해에서 살아남더라도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 이후에나 풀려나는 가혹한 노예의 삶이었다.
종호 학살 사건은 초기 반향이 미미했으나 화가인 터너 등에게 영향을 끼치는 등 점차 노예 폐지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도 남북전쟁(1861∼1865년)이 벌어져 북부가 승리함으로써 노예제 폐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지됐던 노예제로 인해 1천200만명 이상의 원주민이 노예로 전락한 아프리카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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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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