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미국 여배우 시드니 스위니. 그녀는 한 청바지 광고에서 "내 진(Jeans)은 파란색"이라고 했다. 이 광고에서 청바지(Jeans)와 유전자(Genes)의 이중 의미가 겹치는 장면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백인 우월주의를 암시했다는 것이다. 좌파 진영은 "나치식 우생학"이라고 반발했다. 우파 진영은 "광기 수준의 과잉해석"이라고 맞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힘내라! 시드니"라는 글을 올리며 두둔했다. 트럼프의 지지 발언 직후 청바지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의 주가는 20% 넘게 치솟았다.
미국 컬럼비아대와 브라운대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백기 투항했다. 연방 정부의 연구비 지원 중단이란 압박 속에, 일부 대학들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철회와 반(反)유대주의 대응 강화 등 정부의 요구에 응했다. 컬럼비아대는 2천100만 달러 규모의 보상기금까지 조성하기로 했다. 이로써 미국에서 DEI를 고려한 입시 관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서 미국 대법원은 2023년 소수인종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이후 아시아계 입학생은 늘고 흑인·히스패닉계는 줄어드는 추세다. 앞으로 대학의 성적 중심 선발은 소수자에게 불리한 구조로 작동할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트럼프 재집권 이후 본격화됐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워크(Woke·깨어있다) 광신"으로 폄하한다. 특히 트럼프는 좌파 문화와 성소수자 보호 담론을 극단적 자유주의로 몰아붙이는 한편, 반유대주의에는 보다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이에 대학과 예술, 미디어, 기업까지 전 방위적으로 반(反)워크 정비가 진행 중이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은 이를 보수의 재정립으로 본다. 좌파 진영은 "다양성의 퇴행"이라고 반발한다. 문화가 정치화되고, 정치가 문화를 점령한 시대가 돼버린 모양새다.
한국도 문화전쟁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젠더 갈등이다. 남성 혐오 논란이 불거졌던 일부 웹툰·광고 사건부터 여성을 '페미'로 지목해 퇴출을 요구했던 기업 불매운동까지 극단적 대립이 반복됐다. 성소수자 이슈도 논쟁 대상이다. 퀴어 퍼레이드를 놓고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질서라는 가치가 충돌했다. 일부 교육청의 성소수자 교육자료 배포는 '동성애 조장'이란 반발을 샀다. 최근엔 이민정책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초저출산 현실 속에서 외국인 유입이 불가피해지면서 다문화 수용을 둘러싼 이념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좌우 진영이 각각의 가치관을 고수하며 상대방을 배제하고 있다.
문화전쟁의 파장은 예술계의 검열 논쟁에서부터 교육 현장의 커리큘럼, 기업의 채용·광고 방침, 정치권의 입법 과정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좌파 진영에선 이를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보지만, 우파 진영은 "상식에 반하는 과잉"이라고 반발한다. 핵심은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문화전쟁은 한국에서도 점차 유사한 방식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전초전은 시작됐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김종우
저작권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