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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찰칵찰칵 이승을 걷는 나...길상호 시인 사진산문집 '거울 속에 사는 사람' [새책]

OSEN

2025.08.07 17:58 2025.08.0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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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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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희수 기자] '오늘도 찰칵찰칵 이승을 걷는 나.' 

과하지 않은 글귀가 입에 착 감긴다. 어떤 도구를 주로 쓰는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주로 하는 시인인지 한달음에 안긴다. 결구는 좀더 친절하다. '아름다웠던 것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의 기록'('글쓴이의 말' 171쪽)이다. 

길상호 시인의 사진산문집 '거울 속에 사는 사람'이 '기린과숲' 출판사에서 나왔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길상호 시인의 사진산문집이다. 2015년 펴낸 '한 사람을 건너왔다'에 이은 두 번째 사진산문집이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시인은 등단 이후 천상병 시상, 김종삼 문학상, 김종철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왔다갔다 두 개의' 외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언젠가부터 그는 작고한 누나가 물려준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다니며, 그가 사는 동네의 풍경을 차곡차곡 사진으로 남겨왔다. 이 책에는 그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그가 직접 엄선한 사진 80장과 더불어 그와 어우러지는 짧고 시적인 산문 80편이 담겨 있다. 

그는 매일 카메라를 메고 동네 산책을 할 때마다 꼭 누나와 같이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피사체들이 하나하나 누나로 다가와 누나에 대한 그리움도 크지만, 든든한 마음이 들어 산책길이 더 가벼워진다고 한다.

그러니 매일 누나의 숨결을 느끼며 찍은 사진과 글을 붙인 이 책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누나를 향한 헌사와도 같다. “여전히 목소리가 따뜻하네요. / 오늘 가만히 플러그를 뽑아요. / 그래도 당신은 침묵으로 말을 거네요.”(「햇볕의 전화」)라든가, “이곳의 문을 닫고서 저곳으로 간 사람, 문 앞에 오래 머물러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한 번 언 마음」)와 같은 구절에는 “저곳”으로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글쓴이의 말’에서 그는 비석에 새겨진 누나의 이름만 슬픈 게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여기를 사는 이들의 뒷모습도 어딘지 쓸쓸하다고, 풍경 속의 사물도 조금씩 낡아간다고…. 

슬픔의 근원은 기억이다. 기억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어질한데, 시인은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한다. 

“세상의 아름다웠던 것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책에는 떨어져 녹슨 간판, 칠이 벗겨진 담벽, 깨진 창문과 부서진 콘크리트 바닥처럼 대전의 구도심에 자리한 낡아가는 집과 가게와 골목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꽃이나 새, 고양이와 같은 생명들도 엿볼 수 있다. 이들이 마냥 쓸쓸하게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 특유의 따뜻한 시선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추천사를 쓴 이근일 시인은 그의 산책을 작고 여리고 스러지는 것들에 대한 ‘말 걸기’와 ‘쓰다듬기’라 명명하기도 했다.

이근일 시인은 "이 책을 읽는 이들은 그와 함께 산책하는 기분을 느끼는 동시에, 그의 사진과 글에 담긴 오래된 동네의 사물들이 역으로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오는 듯한 생경한 느낌도 얻을 것"이라며 일독을 권한다. 

길상호 시인이 사는 동네는 대전의 구도심 자양동이다. 그는 동네 분위기와 산책의 의미에 대해 한편 이렇게 설명한다.

“대전역 주변으로 해서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생겼죠. 제가 사는 동네에도 하늘공원이 생겨 주말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걷기도 좋고, 대전 시내가 훤히 보여 길 확인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노을이 압권이지요. 그러다 보니 골목골목 쉬어갈 수 있는 카페가 많이 들어섰죠. 구식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이라, 분위기가 다 다르죠. 처음에는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그곳도 이제 얼마 안 가면 다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동네를 돌기 시작했죠. 가다가 고양이를 만나면 가만히 앉아도 보고, 그렇게 한참을 머물면 동네의 역사와 지금의 숨결이 느껴지기도 해요. 오래된 건물, 오래된 상처, 오래된 웃음, 이런 것들이 저와 더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고요.”

기억과 기록 사이에서 시인은 이곳의 문을 닫고서 저곳으로 간 사람들을 추억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강희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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