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일 호남을 찾아 “비상계엄의 책임자를 철저하게 단죄하지 못한다면 언제 또다시 윤석열과 같은 참혹한 짐승, 독재자가 나타나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대표 당선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 예방을 거부하고 있는 그가 12·3 비상계엄 사태 연루자에 대한 철저한 단죄를 거듭 강조한 것이다.
정 대표는 이날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만약 윤석열 일당의 비상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이재명 대통령도 정청래도 불귀(不歸)의 객이 돼서 어디에서 시신도 찾지 못하고 혼령만 모시는 처지가 됐을지 모른다”고 했다. 이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려 했는지, 노상원 수첩을 똑똑하게 기억해야 한다”며 “노상원 수첩과 악수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1야당 패싱’ 논란에 반박한 것이다. 그는 이날 방명록에도 ‘광주 영령들의 뜻대로, 대한민국의 법대로 내란 세력을 척결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정 대표는 당선 다음날인 지난 3일에 이어 일주일도 안 돼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을 두 번째 찾았다. 호남은 민주당 권리당원 중 3분의 1이 밀집한 곳으로 정 대표는 유독 호남에 공을 들여 왔다. 대선 기간에는 골목골목 선거대책위원회 광주·전남위원장을 맡으며 ‘호남 살이’를 했다. 8·2 전당대회에선 호남에서 66.49%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당선 후엔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전남 영암-무안-신안이 지역구인 서삼석 의원을 임명했고, 나머지 1명은 권리당원 투표로 선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정 대표는 의원보다는 당원이 전폭적으로 밀어서 당선됐다”며 “강성 지지 기반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당 장악력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남 무안군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정 대표는 “호남 없이는 민주당의 역사도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비상계엄 내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1980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광주 영령들의 공이 컸다”며 “‘이런 광주에 대해 특별한 보상이 이뤄졌는가’라는 질문에 민주당이 답해야 할 때”라고 했다. 그러곤 “당 호남발전특위에서 호남의 발전 방향에 관해 토론하고, 성과물을 당에 보고해주면 그 내용으로 정부와 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호남의 헌신에 보답하는 든든한 집권 여당이 되겠다. 전남의 숙원인 의료 시설 확충, 첨단산업 및 에너지 산업 육성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거들었다.
이날 회의에선 정 대표가 광주·전남 지역구 국회의원의 기강을 잡는 모습도 연출됐다. 정 대표는 “전당대회 이후 첫 현장 최고위로 전남·광주 합동 회의”라며 “광주시장, 전남지사도 오셨는데 지역 의원들은 어디 있느냐”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사무총장은 왜 안 왔는지 사유를 조사해서 보고하라”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호통을 쳤다.
이날 광주 지역구인 민형배·박균택·양부남 의원, 전남 지역구인 김문수·문금주·주철현·권향엽·신정훈·서삼석 의원은 회의에 참석했다. 박지원 의원은 회의에 잠깐 얼굴만 비쳤다. 정 대표의 엄포에 대표 경선에서 박찬대 의원을 도왔던 정진욱(광주 동남갑)은 페이스북에 해명문을 올렸다. 그는 “4년 1개월간 맘 놓고 쉰 적이 없어 큰맘 먹고 온 독일여행 3일째”라며 “호남 최고위 소식을 이곳에서 들었고 오해 없으시길 바랄 뿐”이라고 썼다.
정 대표는 이날 무안 수해 현장을 방문한 뒤 수해 임시대피소를 찾아 피해 주민과 간담회도 가졌다. 정 대표는 전남 함평군에 위치한 송천교를 둘러보며 지역 관계자로부터 침수 피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간담회에서 주민들은 정 대표에게 “애들이 책도 가방도 없이 학교에 다닌다”거나 “구호 물품을 제대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정 대표는 “무안군수님에게 여쭈니 (요청 사항을 해결)해주신다고 한다. 오늘(8일) 당장에라도 지원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조승래 사무총장에겐 “당에 상시로 대응할 수 있는 긴급재난대책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만들자. 당에서도 전문가를 양성해야겠다”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