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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계 거물" 95세 부자 할머니, 전셋집 사는 이유

중앙일보

2025.08.08 02:00 2025.08.0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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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7년 초봄, 전남 강진의 어느 주택가
문정숙이 시어머니에게 혼나고 있는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문정숙: (시어머니를 쏘아보며) 병신 아들 낳아놓고 무슨 유세요!

17세 문정숙의 앳된 얼굴에 독기 어린 눈빛이 서려 있다.

시어머니: (핏대를 올리며) 요년아! 내 죽을 때까지 입 꾹 다물기로 약속했는디,
느이 양엄마가 글쎄 돈 5만원이랑 쌀 한 가마니에 너 가져가라 하더라!


말 끝나기 무섭게 시어머니가 정숙의 머리채를 잡으려 손을 위로 든다.
정숙은 시어머니 손목을 확 낚아챈다.


문정숙 어린 시절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문정숙: (분노로 몸을 떨며) 내가 머리채 잡힐 일 뭐 했는디요!
간질병에 6살 딸내미까지 있는 서방한테 속아서 시집온 게 머리채 잡힐 일이냐고!

문정숙이 아궁이에 혼인신고서를 찢어 버리는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정숙이 말을 끝내자마자 혼인신고서를 박박 찢어 아궁이 불에 냅다 던진다. 시댁 식구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아무 말 못 하고 쳐다본다. 시댁 식구들을 뒤로한 채 정숙은 대문을 쾅 박차고 나간다.
문정숙이 어린 시절 시댁을 나와 홀로 떠나는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여느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아니다.〈 100세의 행복〉 주인공, 문정숙(95·이하 경칭 생략)씨 이야기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시대, 시부모 밥상을 엎어버렸던 소녀.

가진 것 하나 없던 이 소녀는 100세에 가까운 지금 극진한 ‘VIP’ 대접을 받고 산다.
해외에 억 단위 돈을 기부하는 후원계 거물로 불린다.


모진 세월은 그에게 병이 아닌 면역을 새겨줬다. 가장 가난하고 가장 외로웠던 천애 고아 문정숙은 지금 누구보다 건강하고 풍요롭다.


탄자니아에 학교와 우물을 기증한 문정숙(95)씨가 전남 영암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정필 객원기자
그를 단단하게 빚어낸 건, 사랑받지 못한 어린 날의 허기였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 그 후 180도 바뀐 삶


문정숙은 태어나서 “엄마” 소리 한 번 못 해봤다. 아버지는 일본군 쇠고랑에 차여 징용에 끌려갔다. “세 밤만 자고 있어. 금방 올게” 했던 아버지는 아무리 목 놓아 울어도 오지 않았다.

세 살 되던 해, 1933년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나를 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까….’ 하늘을 원망했다.

고아원 생활을 버텨내고 어느 날,
하늘이 살며시 봄날을 선물했다. 나이 열일곱, 첫사랑이었다.


26살이던 그 남자는 피아노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만든 피아노를 백화점에 팔면서 애지중지 귀한 자식 떠나보내듯 엉엉 울던 그 모습에 마음이 동했다.


그 남자가 군대에 가던 날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무리 사는 게 힘들어도 좀만 더 고생하고 있어. 내가 제대하고 나면 숙이 너, 내 무릎에 어화둥둥 앉혀서 내가 먹여 살릴 거야.”

둘은 “1947년 2월 23일 오후 3시 용산역에서 보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의 날, 문정숙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양엄마가 “어떤 놈인 줄 알고 만나려고 하냐”며 그를 집에 가뒀다. 그 길로 간질병 앓는 남자에게 몇만원에 팔아버렸다.

첫사랑의 실패는 100년 가까이 산 문정숙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나를 얼마나 예뻐해 줬을까, 내 팔자가 얼마나 폈을까 생각해. 남이 정해준 길은 두 번 다시 걷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그의 눈에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먼 봄날처럼 어른거렸다.



돈 없어도 이것만은 꼭… 60년 전 ‘가치 투자’


전쟁이 끝났지만 부모·남편 없는 여자에게 바깥세상은 더 가혹했다. 문정숙은 생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치매 노인을 간병하고, 폐품을 주워다 팔았다.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문정숙이 꼭 지킨 원칙이 있다.
절대 후줄근하게 다니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옷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 한 벌에 40만~50만원씩 하는 고가의 옷을 사 입었다. 지금으로 치면 최고급 명품이었다.

그에게 옷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가치 투자’였다. 설거지하든 폐품을 주우러 다니든, 몸에 걸쳐진 옷만은 늘 정갈하게 유지했다고 한다. “제아무리 삶이 척박해도 길거리 위에서 품위를 잃지 않는 게 인생의 자존심이었다”고 했다.

악착같이 삶을 꾸린 덕일까. 지금은 해외에서 ‘후원계 거물 ’로 불린다.
탄자니아 어린이를 후원하며 극진한 ‘VIP’ 대접을 받는 진짜 부자가 됐다.
그런 문정숙은 지금 자식들을 피해 도망, 24평 아파트에서 전세살이 중이다.

부자가 된 지금, 문정숙이 다짐한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죽어도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을 거야.”

문정숙을 그토록 환멸나게 만든 ‘하이에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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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원.정세희.서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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