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 국민의힘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가 고성과 몸싸움, 물병 투척이 난무하는 난장판으로 얼룩졌다. 반탄(탄핵 반대)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탄핵 찬성) 안철수·조경태 후보가 서로를 향해 비판하는 연설보다 행사장에 나타난 전한길씨가 더 주목을 받는 괴이한 현상도 연출됐다.
이날 오후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열린 대구·경북(TK) 합동연설회에서 당권 주자들은 둘로 갈려 정면으로 충돌했다. 찬탄 후보는 “극우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반탄 후보는 “내부 총질을 그만두라”고 반발했다. 전체 당원 선거인단(약 75만명)의 21.3%에 달하는 약 16만명의 책임당원이 밀집한 ‘최대 격전지’ TK에서 맞붙은 만큼 신경전이 치열했다.
연단에 처음으로 오른 장동혁 후보는 안·조 후보를 강하게 비판했다. 장 후보는 “지난 겨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만은 막아야 한다고 부르짖었지만 결국 탄핵을 막지 못했다”며 “더 부끄러운 것은, 스스로 탄핵의 문을 열어줬던 사람들이 탄핵 반대했던 당원들을 향해 ‘극우’, ‘혁신의 대상’이라 하면서 큰소리를 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다시 구속되고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지만 내란 세력으로 몰릴까 절연하자는 말만 반복한다”며 “동지들을 버리자고 외치는 것”이라고 했다.
장 후보는 선두권 경쟁을 벌이는 김 후보에 대해서도 6·3 대선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사례를 언급하며 “당을 망치고,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반면 조경태 후보는 “국민에게 외면 받는 정당으로는 절대 집권할 수 없다”며 장 후보의 발언을 반박했다. 조 후보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를 덜어내지 못하고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를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전대가 국민들께서 준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읍참마속 심정으로 혁신을 완수하겠다”고 덧붙였다.
큰절로 연설을 시작한 김문수 후보는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반미와 친북, 극좌, 반기업 부패 세력들”이라며 “우리 당 국회의원 107명이 더 이상 분열하면 개헌 저지선(100석)이 무너지고 이재명 총통은 4년 연임제 개헌으로 장기 집권을 획책할 것”이라고 했다. 인적 쇄신보다는 내부 단합이 우선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는 “‘극단주의자들이 무슨 짓을 해도 대구·경북은 밀어준다’는 이 속내를 이번 전당대회에서 반드시 심판해달라”고 다. 안 후보는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며 대통령 직을 차버린 사람, 윤 어게인을 신봉하는 사람 등 극단 세력의 대변자들이 대구·경북에 표를 맡겨 놓은 것 마냥 손을 벌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장외 공방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안 후보는 페이스북에 한국사 강사 출신의 전한길씨와 김·장 후보를 ‘계엄 3형제’로 지칭하며 “대한민국 헌정사의 죄인”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몰아가려는 더불어민주당에게 명분을 주고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이에 장 후보도 페이스북에 안 후보를 겨냥해 “특검이 우리 당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공격해 오고 있는 와중에 무차별적인 내부총질”이라며 “민주당과 같은 편은 다름 아닌 안 후보”라고 썼다.
조경태 후보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김 후보의) ‘계엄으로 죽은 사람 없다’는 발언은 용납될 수 없다”며 “당장 후보직을 사퇴하고 정계에서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당권 주자들이 열을 올리며 싸웠지만 정작 이날 합동연설회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은 전한길씨였다. 당내 극우화 논란의 중심에 선 전씨는 이날 ‘전한길뉴스’ 발행인 자격으로 기자석에 앉았다. 국민의힘에선 전씨에게 출입 비표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전씨는 언론인 신분을 인증하는 ‘PRESS(프레스)’ 비표를 차고 기자석에서 후보들의 연설을 지켜봤다.
문제는 그가 여느 언론인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기자석에서 그는 취재를 하는 대신 반탄 후보 연설에 손뼉을 치며 “잘한다”고 외쳤고, 반대로 찬탄 후보 연설에는 “배신자”라고 소리쳤다.
특히 찬탄 진영의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가 연설에 나서자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나왔다. 김 후보의 소개 영상에 전씨를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자 행사장에 모인 당원들 사이에선 김 후보를 겨냥해 “배신자”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전씨는 “김근식이 나를 비난한다”며 김 후보가 연설하는 도중 기자석을 벗어나 당원석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러곤 자신의 지지자들과 함께 손을 뻗으며 “배신자”라고 외쳤다. 또 조경태 후보 연설 땐 전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위에 올라서 한 손을 들어 항의하다가 제지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찬탄 후보 측 지지자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전씨를 향해 물병을 던지거나 전씨에게 몰려가 “기자석에 왜 있느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대표 후보들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흥분한 지지자끼리 가벼운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난장판에 가까운 행사로 인해 국민의힘 지도부의 “전당대회를 통한 국민으로부터의 신뢰 찾기”는 공염불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합동연설회 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전날 김문수 후보의 ‘윤석열 재입당’ 주장에 대해 “(윤 전 대통령) 본인이 입당할 생각이 있는지조차 아직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거론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혁신 전대를 통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이 말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12일 부산·울산·경남(PK) 합동연설회 등 총 4차례의 연설회와 3차례 방송 토론회를 거쳐 22일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선출한다. 본 경선에는 당원 투표 80%, 여론조사 20%를 반영해 대표를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