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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대상’ 이희주 작가 “K-자매의 파멸 속에서 사랑을 찾아보세요”

중앙일보

2025.08.1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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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향한 팬의 사랑을 관찰해 소설로 녹여내는 이희주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상(理想)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욕망, 침범 등의 단어로 표현되는 사랑의 이면을 과감하게 다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라와 사야는 한국에 사는 30대 여성이자 자매다. 동생 사야가 “이번엔 진짜야, 진짜 이번 한 번만 도와줘” 말하면 언니 사라는 한숨을 쉬며 돈을 송금한다.

“한없이 연장만 되는 비정규직에 머물”며 적당히 만족하고, 커피값 1500원을 아끼며 사는 사라와 “가족은 하나. 가족의 돈은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하며 현재의 기쁨과 소비에 집중하며 사는 사야는 너무 다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한국사회에서, 정반대로 살아가는 둘이 자매라는 연(緣)으로 엮여버렸다.

지난 4일 제26회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희주(33) 작가의 단편소설 ‘사과와 링고’는 사라와 사야 자매의 이야기다. 사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사라와 사야가 겪는 불행을 낱낱이 소개한다. 그리고선 모이지 않는 저축액 속에서도 사랑하는 뮤지컬을 꼭 챙겨보며 “살아갈 힘”을 얻는 사라가 사야의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삶을 탓하다 못해 직접 파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다수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NCT WISH(엔시티 위시)의 팬이라고 밝혀왔다. 사라가 뮤지컬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희주에게 아이돌은 “삶을 살아가는 데에 큰 힘”이 된다. 그는 “기회가 오면 아티스트와 협업을 해보고 싶다. 스스로의 작품을 온전히 감당하는 ‘소설쓰기’와는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효석문학상 심사위원단은 “가족관계 내에서 K-장녀의 위치, 현대 젊은 여성들의 삶과 감성을 잘 담아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소설은 민음사의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 4, 5월호에 발표됐고, ‘사과와 링고(りんご, 한국어로 사과)’라는 제목은 사야가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 ‘사과’와 ‘링고’에서 따왔다.

지난 7일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사과와 링고’는 지난해 8월 처음 구상한 소설”이라며 “(수상 소식이) 기쁘고,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소설을 대하는 마음은 늘 같다. 재밌어서 쓴다.”
단편 ‘사과와 링고’가 발표된 민음사의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의 4, 5월호 표지. 사진 민음사
이효석문학상은 지난해 5월 1일부터 지난 4월 30일까지 발표된 중단편 소설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이희주 작가가 쓴 두 단편소설 ‘사과와 링고’와 ‘최애의 아이’가 함께 본선에 올랐다. ‘최애의 아이’는 아이돌 정자 공여 시술이 상용화된 시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설정 속에서 여성의 욕망과 좌절을 다룬 작품이다.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2016년 『환상통』을 발표할 때와 ‘사과와 링고’, ‘최애의 아이’를 발표한 2025년의 ‘팬 문화’는 확실히 다르다. 그는 “친밀감까지 소비대상이 되는 지금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팬들이 자기 주관을 가지고 내면의 규칙을 세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희주는 아이돌의 팬을 주인공으로 세워 동시대 팬덤의 문법을 구체적으로 담은 장편소설 『환상통』(2016)으로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에도 『성소년』(2021), 『마유미』(2023), 『나의 천사』(2024), 『횡단보도에서 수호천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2024) 등 꾸준히 소설을 발표해 온 9년 차 작가다. 『성소년』은 지난해 대형출판사인 미국의 하퍼콜린스와 영국의 팬 맥밀런에 각각 1억원대 선인세를 받는 조건으로 판권이 팔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랑의 이면까지 들추어내는 글을 써 온 그는 ‘최애 아이돌’을 납치하는 이야기는 물론(『성소년』), ‘아름다움’이 노골적인 권력이 된 시대를 그리고(『나의 천사』), 유령을 욕망하는 소년(『횡단보도에서…』)을 주인공으로 세우기도 한다. 『환상통』 속 인터뷰 제목으로 쓰인 ‘아름답고, 이상하고, 논쟁적인’이란 말은 그의 작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사과와 링고’에는 사라와 대화하는 환상 속 존재 ‘마크’가 등장한다. 그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메타포다. “사라도 어떤 의미에선 고립된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환상을 만들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가 ‘사과와 링고’를 통해 가족 관계를 탐구한 이유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타인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늘 뒤섞임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SNS, 유튜브 등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볼 수 있는 지금은 쾌적한 시대다. 그럼에도 ‘어쨌든 우리는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고, 가족 관계를 다루게 됐다”고 말한다. 작가는 자매의 욕망과 불행이 뒤얽힌 이 소설 속에도 “미약하게나마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희주에게 소설이란 세계를 건축하는 일이다. “소설을 쓸 때만큼은 세계를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감각이 좋다. 소설쓰기의 원초적인 즐거움이다.” ‘사과와 링고’에서 주목한 세계는 사라와 사야 자매의 세계다.

인물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고, 감정묘사를 신경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물을 만들어낼 때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인물을 두고, 계속해서 어긋남을 발생시킨다”고 말한 그는 “현실의 인물들이 가진 복잡성을 외면하지 않고 싶다”고 강조했다.

‘사과와 링고’는 이달 내 발표 예정인 그의 소설집 『크리미(널)러브』(문학동네)에 실릴 예정이다. 제목은 ‘범죄자’라는 뜻을 가진 Criminal(크리미널)과 식감이 연상되는 크리미 러브(Creamy Love)를 떠오르게 한다. “2022년 겨울부터 올해까지 발표한 작품을 모았다. 버추얼 휴먼, 아이돌, 퀴어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내가 그때마다 관심을 가졌던 주제들이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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