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지급되었다. 새 정부가 지역 소비를 통해 어려움을 겪는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다. 벌써 긍정적인 경제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뉴스도 이어진다. 그런데 이번에도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이주민은 정책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같은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 사회를 이루는 공동체의 일부이지만 이번 정책의 대상이 되는 이주민은 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차별은 단순한 행정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다. “당신은 우리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이 아니다.” 소비쿠폰은 단지 돈 몇만 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정부가 누구를 ‘우리’로 인정하고, 누구를 ‘경계 바깥’에 두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서 많은 이주민은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뒷전으로 밀려났다. 차별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똑같이 돈 벌어서 세금 내는데
소비쿠폰 대상에서 대부분 배제
왜 이주민은 ‘우리’가 못 되나
민생회복 지원금을 외국인한테까지 줘야 하냐는 말은 곳곳에 넘쳐난다. 이번 지원 대상 결정 배경에는 이런 여론을 예상한 정책적 고려도 있을 것이다. “세금은 우리 국민이 낸 건데 왜 외국인한테까지 줘야 해요?” “기껏해야 몇 년 있다가 떠날 사람들한테, 뭘 그렇게 챙겨줘요?” “그 사람들 챙기느라 우리 몫 줄어드는 거 아냐?” 이런 말들은 단순한 편견이나 혐오만은 아니다. 내게 돌아오는 몫을 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누군가와 나누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서운함이 깔려 있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 시기,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이해는 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질문해야 한다.
정말로 이주민은 우리와 무관한 존재일까? 내가 만난 한 이주노동자는 매일 새벽 6시에 농장에 나가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매달 건강보험료를 10만원 넘게 낸다. 또 다른 이주여성은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학원비에 허덕인다. 이들은 소비쿠폰이 생기면 단골 가게에 더 가고 싶고, 아이에게 간식 하나라도 더 사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들이 소비하는 돈은 어디로 가는가? 지역의 소상공인, 시장 상인, 골목의 편의점으로 간다. 결국 이주민이 받은 쿠폰은 한국 사회의 자영업자에게 돌아간다.
소비쿠폰의 목적은 복지의 측면도 있지만 원래 목적은 경제 활성화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만든 정책이라면, 소비의 주체를 가려선 안 된다. 지역에서 소비하는 이주민도 ‘소비주체’이고, ‘경제주체’다. 그런데 왜 단지 체류자격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되는가?
물론,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낸 세금을 왜 국적도 없는 사람한테 쓰냐?” 하지만 따져보자. 이주민도 각종 세금을 내고 있다. 소득세·주민세·부가가치세, 심지어 건강보험료까지. 체류 연장이나 자격 유지와 직결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민은 이 세금들을 불성실하게 낼 수가 없다. 심지어 국적이 없어도, 선주민과 똑같은 세율로 납부하고 있다.
게다가 소비쿠폰은 외국으로 가져갈 수도 없고, 저축을 할 수도 없다. 모두 살고 있는 지역에서 써야 한다. 결국 이 돈은 한국 사회 안에서 돌고 돈다. 국적이 아니라, 돈이 실제로 어디서 쓰이고 어떤 효과를 낳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반대하는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첫째, 명확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단순히 모든 이주민에게 일괄 지급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일정 기간 이상 체류한 등록 이주민, 지역에서 실질적인 소비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제한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 이 기준은 시민 감정과 정책 실효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현실적 타협안이다.
둘째, 정보 공개와 투명성이 중요하다. 이주민에게 얼마나 지급되고, 그 소비가 지역경제에 어떤 효과를 줬는지를 수치로 설명해야 한다. 수치와 사례는 막연한 반감을 이성적으로 바꾸는 데 유효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동체라는 감각이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마을·도시에서 이미 이주민은 함께 숨 쉬고 있는 이웃이다. 청소를 해주는 사람,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 마트에서 계산을 해주는 사람,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없다면 한국의 일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들을 정책에서만큼은 ‘외부인’ 취급한다.
공동체란 국적이 아니라, 함께 사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마트를 이용하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공기를 마시는 사람들. 이들이 받은 소비쿠폰이 내 가게 매출이 되고, 내 이웃의 경제적 회복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