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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의 시시각각] “할 수 있는 게 없다”던 김건희 여사

중앙일보

2025.08.10 08:24 2025.08.10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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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4개월쯤 지났을 무렵인 2023년 9월, 자살 예방 관련 행사에 참석한 김건희 여사를 본 적이 있다. 자살의 갈림길에 섰던 청년과 자살 예방 활동가의 모임이었다.

김 여사는 축사하던 중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제가 죽기만을 바란다”는 얘기를 했다. “어느 종교인이 (해외 순방길에) 비행기가 떨어지라고 하는 걸 들었다”고 하면서 “정신과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김 여사의 다음 발언은 뜻밖이었다. “남편이 대통령이 돼서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리투아니아 명품 논란 직후 발언
이후 한동훈·조태용에게 문자 보내
구속 기로에서 진정한 사과 필요
김건희 여사가 2024년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서울 마포대교를 걸으며 관할 지구대 경찰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무슨 일을 하려고 했고, 어떤 대목에서 막혔을까. 이 시점은 김 여사가 최재영 목사에게 명품백을 받는 영상이 공개되기 두 달 전이다. 남북관계를 이끌 구상이나 인사 관여 의혹이 잠복했을 때였다. 내조에 전념하겠다던 영부인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니 의아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이 시기는 김 여사에게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해 11월의 명품백 수수 영상도 충격이었지만, 두 달 전인 7월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김 여사 부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해 7월 11일 김 여사는 리투아니아의 명품숍에 있었다. 유럽 순방 중 경호원 10여 명을 이끌고 명품 가게에 간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한국에선 폭우 피해가 속출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 일정을 취소하며 수해 현장으로 달려간 상황이었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김 여사 특혜 논란까지 불거졌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오히려 순방 일정을 연장해 우크라이나로 갔다. 김 여사의 명품 쇼핑 의혹이 터지고 전국에서 수해 사망자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뜻밖이었다. 중앙일보 2023년 7월 17일자 1면 머리기사가 ‘오송 지하차도 비극’이고 두 번째가 ‘윤 대통령, 젤렌스키와 연대 선언’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귀국 직후 수해 현장인 경북 예천에 달려가 군경을 독려했고, 이틀 뒤 예천에서 채 상병 비극이 터졌다. 지금 세 개 특검 중 ‘김건희 특검’과 ‘채 상병 특검’이 이 시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내일(12일)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다툴 주가조작 의혹(2010~2012년)이나 공천개입·청탁(2022년 4~7월) 혐의는 훨씬 전의 일이다. 만약 김 여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던 시점 이후라도 국민 눈높이에 맞게 처신했다면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6일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잇따라 터진 명품 논란에 국민의힘에서도 김 여사 사과를 요구했다. 김 여사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사과 거부 텔레그램 문자가 공개돼 민심이 악화했다. 국민의힘 총선 완패를 부른 악재는 김 여사와 채 상병 사건이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안은 국회에서 불과 4표 차로 통과했다. 김 여사 부부가 총선 전에 진지한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계엄 직전 김 여사와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문자메시지를 교환한 장면도 낯설다. 제2부속실 미설치도 화를 키웠다. 김 여사가 열의를 보인 자살 예방 활동은 서울 마포대교에서 경찰관에게 지시하는 듯한 사진 한 장으로 역풍을 맞았다. 참모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배포되지 않을 사진이었다.

위기에 몰린 김 여사는 이제라도 상식의 세계로 돌아와야 최악을 면한다.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게 출발점이다. 김 여사는 세 번 사과했으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내조에 전념하겠다던 대선 전 사과는 허언이 됐다. 명품백 수사 검사에게 했다는 사과는 아니한만 못했다. 최근 특검에 출석하며 한 사과는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사족을 달아 면죄용 논란만 키웠다.

이제 사과할 기회도 얼마 없다. 한 번이라도 국민의 마음에 와닿는 사과를 할 수 없을까. 서울구치소에서 전대미문의 반항을 하는 남편을 대신해 비상계엄에 대한 사죄까지 한다면 국민이 받은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지 모른다.





강주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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