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자유분방한 시각 언어로 동시대 회화의 흐름을 이끌어오며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의 교차점’이라고 불리는 작가 캐서린 번하드. 그의 그림체는 강렬하고 직설적입니다. 인기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캐릭터 등 대중문화 속 상징과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일상의 사물들을 과감한 색채와 즉흥적인 붓질로 재구성해왔죠. 일상 속에서 보이는 물건부터 ET, 핑크팬더, 새서미 스트리트, 심슨, 가필드 등 다양한 캐릭터가 그림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캐서린 번하드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세계 최초, 최대 규모의 회고전인 ‘캐서린 번하드: Some of All My Work’에서는 전 연령층이 자유로운 색의 향연을 즐길 수 있죠.
그는 화려한 색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작가인데요. 이번 전시 오픈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요즘 사람들은 색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옷도 검정이나 하양 위주로 입는데, 색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그래서 더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싶었고, 나는 색을 사랑하는 작가입니다“라고 밝혔어요. 이어 자신이 작업하는 주제는 모두 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했죠. “제 작업은 삶의 일기와도 같아요. 지금 제가 집착하고 있는 것들 슈퍼모델, 스와치 시계, 모로코 카펫, 푸에르토리코 작업실의 샤워기, 포켓몬, 축구 등 제 작업은 색채에 관한 모든 것이기도 해요.” 삶의 일기와도 같다고 말하는 작품들의 주제는 익히 알고 있는 대중문화 즉, 그중에서도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고 애착을 가진 혹은 강렬한 색감에 매료된 캐릭터들이에요.
대중문화뿐 아니라 세계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정글이나 열대 섬에서의 뜨거웠던 감각과 활기찬 문화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도 선보입니다. 캐서린 번하드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물을 뿌리고, 물감이 흘러내리고 서로의 색이 엉켜가는 것을 보며 새로운 색상과 물길이 남긴 자국들 위에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붓질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죠. 깔끔한 선으로 정돈된 애니메이션이 아닌 더욱 생생하고 유쾌한 혼란 속에서 캐릭터들은 다시 태어납니다. “최근 물감에 물을 많이 섞다 보니 그림이 다소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 놓고 작업하는데, 이때 물의 자연스러운 이동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이 좋아요. 그 예기치 않음과 자유로움을 관찰하는 게 흥미롭게 느껴지죠.”
정해진 조형 방식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는 그의 회화는 정리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기보다, 개인적인 경험과 시대적 감각이 자유롭게 뒤섞이는 실험의 장에 가깝죠.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자유, 그리고 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믿음은 캐서린 번하드를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역동적인 작가로 만들었어요. 그는 틀에 박힌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감각을 믿고,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그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도전적인 태도로 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현대 미술의 경계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2000년대 초반, 뉴욕 미술계에 처음 데뷔하며 화제를 모았던 초기의 슈퍼모델 시리즈부터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대형 신작들까지 총 140여 점의 회화·조각을 통해 그가 일관되게 탐구해온 시각적 언어와 작가적 태도를 소개하죠. 작가의 삶과 작업에 영향을 준 시기별 주요 작업을 총망라하여 시간순으로 구성한 다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됩니다.
특히,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작업실을 약 100평 규모로 생생히 옮겨 재현한 마지막 섹션을 놓치지 마세요. 이곳에서는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업한 대형 신작들이 세계 최초로 공개됩니다. 관람객은 그의 작업 환경을 직접 마주하고, 작품의 영감이 된 다양한 사물들, 색채, 구조를 통해 작가의 창의적 세계와 삶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죠. 대중문화와 현대미술이 교차하는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잠시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는 잊어버리고 함께 즐기고 추억을 공유하며 소유할 수 있는 교차점이 생깁니다. 어린 시절 TV 앞에서 즐거워했던 캐릭터들을 캐서린 번하드가 선보이는 화려한 색과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형태로 다시 만나보길 추천해요.
“사람들이 전시에 가서 작품을 보면서 세상의 끔찍한 일들을 잠시라도 잊을 필요가 있어요. 색과 예술을 보면서 우리가 인간이며 세상에서 선한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이번 전시가 자유롭고 거침없는 그의 회화적 태도를 조망하는 자리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시각적 언어를 어떻게 감각하고, 예술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경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캐서린 번하드: Some of All My Work’
기간 9월 28일(일)까지
장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 2만2000원, 청소년 1만7000원, 어린이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