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상 장기 흡연자의 경우, 흡연이 폐암·후두암 발병에 기여하는 위험성이 80~90% 수준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간·위·대장암 등 주요 암의 최대 3배 이상으로 훨씬 높은 수준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11일 환경·유전 변수가 동일한 사람을 대상으로 흡연으로 인한 암 발생 위험도 등을 주요 암종 별로 비교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연세대 보건대학원과 함께 2004~2013년 건강검진 받은 수검자 13만6695명을 2020년까지 추적 관찰한 결과다. 분석 대상 암종은 폐암(전체·소세포폐암·편평세포폐암·폐선암), 후두암(전체·편평세포후두암)과 위암, 대장암, 간암이다.
연구 결과, 다른 조건이 비슷하더라도 흡연에 따른 폐암·후두암 발생 위험도는 여타 암종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30년 넘게 담배를 사흘에 두 갑 이상(20갑년·갑년은 하루 평균 흡연량(갑)X흡연 기간(년)) 피운 '현재 흡연자'의 소세포폐암 발생 위험은 비흡연자의 54.5배에 달했다. 편평세포폐암, 편평세포후두암도 이들 흡연자의 발암 위험이 각각 21.4배, 8.3배 높았다. 반면 위암은 2.4배, 간암 2.3배, 대장암 1.5배로 낮은 편이었다.
특히 흡연이 폐암·후두암 발병에 기여하는 비중(암 발생 기여 위험도)은 절대적으로 높았다. 암 발생 기여 위험도는 특정 집단의 질병 발생률 중 위험 요인이 얼마나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30년 넘게 담배를 사흘에 두 갑 이상 피운 현재 흡연자에선 흡연이 소세포폐암 발생에 기여하는 정도가 98.2%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편평세포후두암(88%), 편평세포폐암(86.2%)도 비슷했다.
하지만 흡연이 대장암 발생에 기여하는 비중은 28.6%에 그쳤다. 소세포폐암과 비교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위암(50.8%), 간암(57.2%)도 흡연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건강보험연구원은 "이들 암엔 흡연 이외의 원인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담배 등 후천적 이유가 아닌 '유전' 요인이 암 발생에 기여하는 비중은 반대로 나타났다. 편평세포폐암 발생에 유전 요인이 작용하는 비중은 0.4%로 매우 낮았다. 그러나 대장암(7.3%), 위암(5.1%)은 각각 유전 요인 영향이 편평세포폐암의 18.3배, 12.8배 크게 나왔다.
이러한 흡연과 암 발병의 인과성은 건보공단이 담배회사 3곳에 제기한 흡연 폐해 손해배상 소송(담배소송)의 핵심 쟁점 중 하나로 꼽힌다. 2014년 시작된 담배소송은 1심(담배회사 승소)을 거쳐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공단 측은 30년 이상 흡연 후 폐암·후두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건강상 피해가 담배로 발생한 게 분명하다는 입장이지만, 담배업계는 흡연 이외 다른 발병 요인이 없다는 점을 공단이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선미 건강보험연구원 건강보험정책연구실장은 "폐암·후두암은 여타 암종과 비교해 흡연이 기여하는 정도가 월등히 높고, 유전 요인 영향은 극히 낮았다. 흡연과 폐암·후두암 발생 간의 인과성이 더욱 명백해졌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