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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다룬 코미디 영화…'아이 캔 스피크' 재개봉 이유

중앙일보

2025.08.11 01:12 2025.08.1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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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연 대표는 "김구 선생님이 저서를 통해 문화의 힘을 이야기한 적 있는데, 많이 공감됐다"며 "문화의 힘을 이용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모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강정현 기자
" 당시엔 할머님들을 위로해드리려 만들었는데, 지금은 이분들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재개봉을 결정했죠.(강지연 대표) "

13일, 광복 80주년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14일)을 맞아 재개봉하는 한국 영화가 있다. 나문희, 이제훈 배우 주연의 코미디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다. 개봉 당시 약 320만명의 관객과 만났던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2007년 미국 하원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실화를 감동적으로 다뤄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의 숨은 일등공신이 있다면 제작사 대표인 강지연(50) 씨다. 1999년 영화 마케팅으로 영화계에 입문, 11년간 영화 홍보 업무를 해 온 강 대표는 2014년부터 영화사 시선의 대표로 일했다. 지난 10일, 재개봉을 기념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배급사 마노엔터테인먼트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강 대표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재개봉을 한 데에 대해 “일본의 사과도 필요하지만, 그전에 할머님들이 이렇게 이뤄낸 성과, 우리가 이겨낸 통쾌한 사건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강 대표는 "이 작품의 감독님으로 섬세하고 민감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현석 감독을 모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나문희 배우는 금방 캐스팅이 됐다. 남자 배우 캐스팅만 1년이 걸렸다. 이제훈 배우는 섬세한 코미디를 구사해내는 김현석 감독의 연출 소식을 듣고 바로 작품 참여를 결정했다. 강정현 기자
그는 영화 기획 계기에 대해 “영화 제작사 기획실에서 일할 때, 새로운 시나리오 작품들을 검토하는 일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첫 장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자들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담긴 시나리오를 수차례 검토했다.

그러다 직접 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이렇게 많은 분이 이야기하려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다. 대중영화로서 관객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자.” 그렇게 강 대표는 2008년부터 ‘아이 캔 스피크’ 준비를 시작했다. 진정성 가득한 강지연 대표의 기획과 불편하지 않은 세련된 코미디를 만들어내는 김현석 감독의 연출, 거기에 나문희, 이제훈 배우의 연기가 기적같이 만나 ‘아이 캔 스피크’가 탄생했다.
  이제훈(왼쪽)과 나문희 배우는 각각 민원담당 공무원과 민원인으로 만난다. 강 대표는 "같지만 다른 원칙주의자로서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톰과 제리같은 관계"라고 표현했다. 마노엔터테인먼트
역사적 아픔을 다룬 소재와 코미디라는 장르. 둘을 놓고 보면 이질감이 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유쾌한 ‘민원 왕 할머니’ 나옥분(나문희)을 사랑스럽게 묘사하는 것에 먼저 집중했다. 마을의 불법행위를 씩씩하게 잡아내고, 영어 회화를 배우러 다니는 옥분은 자신과 비슷한 ‘원칙주의자’이자 민원담당 공무원인 박민재(이제훈)와 계속해서 부딪힌다. 옥분과 민재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옥분의 과거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이 등장한다.

“내가 만난 할머니들의 모습은, 사람들이 떠올릴 법한 피해자의 스테레오 타입과 달랐다. 굉장히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셨다”는 강 대표는 “(이 영화가) 수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우리가 승리한 이야기라, 사람들에게 유쾌함과 통쾌함을 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개봉했을 땐 관객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라는 데에서 진입장벽을 느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매해 광복절마다 강 대표에겐 “(광복절 특집 방영으로)‘아이 캔 스피크’를 이제야 만났다”는 관객들의 반응이 들려온다. 그는 “이번 재개봉을 통해 새로운 관객, 특히 젊은 분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특히 큰 극장 안에서 다 같이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보시는 기쁨을 느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 9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열린 '202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 학생들이 고인이 된 할머니들의 흉상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5월 이옥선 할머니의 사망으로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연합뉴스
그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생존자는 2017년 36명에서 현재 6명으로 줄었다.

2023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로 이용수 할머니와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또 다른 승리를 일궈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실제 배상을 받거나,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는 일은 전망이 불투명하다. 시민단체 주도로 열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는 지난 6일 1712차까지 꾸준히 이뤄져 왔지만, 2020년부터 최근까지도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며 혐오를 표하는 세력의 ‘맞불 집회’ 역시 계속됐다.

2019년까지 수요시위에 나갔다는 강 대표는 “할머님들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젊은 분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봤다. 최근의 ‘맞불집회’를 보면서는 슬펐다. 그러나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산 증인’ 할머니들이 계시지 않나. 그 앞에서 없었던 일이라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강지연 대표는 "우리 동네 민원 여왕, 미 의회에 민원을 제기하다"라는 카피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의회 씬은 꼭 미국에서 찍어야했다. 그 과정에서 미주 한인 유권자 연대와 만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이분들이 당시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이 결의안을 내기 전, 하원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땀한땀 노력하셨더라. 그 이야길 들으며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고 전했다. 강정현 기자
강 대표는 이어 “앞으로 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아니더라도, 계속 이 일을 환기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도 영화 제작자로서 자신이 추구하는 ‘세련된 유쾌함’과 사회 문제를 다루는 진정성을 꾸준히 밀고 가려 한다. “‘아이 캔 스피크’로 많은 분들이 기대를 보내주셨다. 지금은 젊은 교포들이 한국에 와서 사기를 치는 코미디 영화와 사회 문제를 다룬 저예산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잘 살고 싶어지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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