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두 차례 유찰된 ‘국가 인공지능(AI) 컴퓨팅 센터’ 구축 사업을 재추진하면서 민간 기업 참여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주요 독소 조항들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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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이달 말 공개를 목표로 국가 인공지능(AI) 컴퓨팅 센터 구축 사업의 공모 요건 조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두 차례 진행한 공모에서 지원한 사업자가 단 한 곳도 없었던 탓이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업계 요청 사안들을 중심으로 공모 요건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재공고를 내기 위해 관계 기관 등과 속도감 있게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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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AI 컴퓨팅센터 사업은
민관 합작으로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집적한 AI 데이터센터를 짓고, 이를 통해 국내 기업·기관의 AI 개발과 활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 규모는 총 2조5000억원으로, 2027년까지 1엑사플롭스(EF·1초에 100경 번의 소수점을 포함한 복잡한 연산 처리 가능) 능력을 갖춘 AI 컴퓨팅 센터를 비수도권에 짓는 게 목표다. 대규모 AI 인프라 확보와 국내 AI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미국의 초거대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와 비교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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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 요건 어떻게 바뀔까
정부는 기존 공모안에서 유찰 원인으로 지목되는 세 가지 조항의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우선 사업을 추진하는 민관합동 특수목적법인(SPC)의 지분 구조를 민간이 더 많은 지분을 갖도록 수정할 방침이다. 기존안은 공공이 51%, 민간이 49%의 비율로 총 4000억원을 출자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사업 참여를 검토했던 기업들 사이에서는 2000억원이나 출자해야 하는데도, 정부가 SPC 지분의 과반을 가져가 사업의 자율성을 방해받을 것이란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가 원할 때 공공 지분을 민간 사업자가 다시 사들여야 하는 매수 청구권(바이백) 조항도 조정 대상이다. 공모 참여를 검토했던 ICT 업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AI 인프라를 구축하고도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할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인데다 사업이 부진하면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해 기존 공모 요건에선 사업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국산 AI 반도체를 2030년까지 컴퓨팅 센터 구성 반도체의 최대 50%까지 확충해야 하는 의무도 삭제하거나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사 상당 수가 엔비디아의 GPU가 탑재된 컴퓨팅 서비스를 원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아직 검증되지 않은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의무적으로 50% 이상 확충해야 하는 건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NPU 의무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 국산 AI 반도체를 구입하거나 컴퓨팅 센터 사업자가 NPU 이용 목표를 달성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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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입찰, 성공 가능성은
업계에선 독소 조항들이 완화되면 사업 참여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한 IT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비현실적인 사업 구조가 바뀌면 참여 유인이 생길 것”이라며 “다만 사업성을 더 높이려면 수요처 확보와 사업비 지원 등 정책 지원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