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재건축 부담금만 10억?...'돈 먹는 하마' 압구정 재건축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중앙일보

2025.08.11 08:22 2025.08.11 13:4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안장원 부동산선임기자
30평대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 84㎡ 아파트의 최고 실거래가는 지난 6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72억원이다. 흔히 말하는 평(3.3㎡)당 가격은 전용면적이 아닌 복도 등 공용공간을 합친 공급면적을 기준으로 말하는데 공급면적이 112㎡인 이 아파트의 평(3.3㎡)당 가격은 2억1200만원이다.

그런데, 전용면적은 같으면서 공용면적이 작아 평당 가격이 더 비싼 아파트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전용 84㎡, 공급 99㎡가 지난달 초 평당 2억1600만원인 65억원에 거래됐다. 평당 가격이 래미안원베일리를 제친 이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도 없고 지어진 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다.

압구정 아파트 1만여가구의 재건축이 가속도를 내며 가격이 치솟아 100억대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압구정동 전경. 사진 강남구청
최고 60층 넘는 1만3000가구로 재건축

올해 100억원 이상 서울 아파트 거래(32건) 3건 중 하나인 11건이 압구정동에서 나왔다. 지난해 1년간 100억원 이상 압구정동 거래는 1건이었다.

초강력 6·27 대출규제도 압구정동에선 힘을 쓰지 못한다. 6·27 이후 지난달까지 한 달간 거래 건수가 27건이다. 직전 3개월간 월평균 29건과 별 차이 없고 가격 상승세도 꺾이지 않았다. 6·27 이후 압구정동 아파트를 사기 위해 몰린 돈이 1940억원이다. 가구당 49억3000만~127억원, 평균 72억원이다. 한도 6억원까지 대출받았다 하더라도 매입 자금 대부분은 종전 주택 매각 대금이든, 여윳돈이든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6·27규제 아랑곳않는 압구정동
재건축 후 최고가 기대감 높아
거래 규제가 되레 가격 자극
조합원-일반분양자 비용 역전도
압구정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압구정동 매수자는 대출규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강남구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이어서 직접 거주할 생각으로 매수한 ‘찐’ 수요”라고 말했다.

압구정동에 규제가 장벽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재건축 기대감 때문이다. 1980년대 지어진 압구정동 1만여가구는 6개 구역으로 나눠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4곳이 2021년 조합을 설립하고 재건축 밑그림인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구역별 정비계획안에 따르면 15층 이하 전용 43~264㎡ 1만여가구가 최고 60층이 넘는 전용 59~300㎡ 1만3000여가구로 다시 지어진다. 총 사업비가 15조원 정도다. 2구역 속도가 가장 빨라 지난 3월 정비계획을 확정한 데 이어 다음달 시공사를 선정할 예정이다. 압구정 재건축이 5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압구정동이 재건축 이후 반포 등을 능가하는 국내 최고급 주거지역으로 거듭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그런데 재건축으로 짓는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거액의 매수가 끝이 아니다. 돈이 더 들어간다. 추가분담금이 있다. 추가분담금은 공사비 등 사업비에서 일반분양수입을 뺀 금액이다. 압구정동은 공사비가 많이 오른 데다 초고층으로 고급스럽게 지을 계획이어서 사업비가 많이 들어가는 반면 일반분양수입은 적다. 2구역이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에서 제시한 공사비가 3.3㎡당 1150만원이다. 2023년 완공한 래미안원베일리나 현재 공사 중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공사비가 3.3㎡당 800만원 이하다.

압구정동 일반분양가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아 현재 기준으로 추정된 가격이 3.3㎡당 8000만원대다. 3구역 정비계획안을 보면 사업비가 5조9000억원이고 일반분양 수입이 2조원 정도다. 조합원이 기존 집을 내놓고 추가로 내야 할 현금이 4조원에 가깝다. 기존 주택에서 가장 작은 전용 84㎡를 가진 조합원이 전용 84㎡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추가분담금이 2억원이다. 전용 157㎡에서 167㎡로 갈아타는 데는 18억원이다. 3구역에서 가장 큰 전용 245㎡가 새 아파트 248㎡에 들어가려면 34억원이 더 필요하다.

전용 84㎡, 조합원 67억 vs 일반분양 30억

압구정 아파트값이 뛰면서 조합원과 일반분양자간 보기 드문 비용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주택형을 분양받는 데 조합원이 훨씬 많은 돈을 내야 한다. 3구역의 경우 분양가상한제로 추정한 전용 84㎡ 일반분양가가 30억원이다. 기존 전용 84㎡를 65억원에 구입한 조합원이 전용 84㎡로 들어가는 경우 추가분담금 2억원을 합치면 실제 비용은 일반분양가의 두 배가 넘는 67억원이다.

백준 J&K도시정비업체 대표는 “당첨 불확실성이 큰 치열한 청약경쟁을 거칠 필요 없이 안전하게 분양받을 수 있는 ‘조합원 프리미엄’인 셈”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압구정 일반분양분은 1400가구 정도로 예상되는데 모두 전용 85㎡ 이하다. 85㎡ 초과가 없기 때문에 중대형 주택을 원하면 조합원이 되는 수밖에 없다.

매수자들은 비싼 프리미엄을 치르더라도 남는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재건축 후 압구정 몸값은 현재 3.3㎡당 최고가가 2억원을 넘보는 반포를 뛰어넘을 것으로 본다. 3.3㎡당 3억원 전망이 나오는데 전용 84㎡가 100억원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67억원이 아깝지 않다.

재건축부담금 10억원 넘을 듯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압구정 재건축 주민이 각오해야 할 비용이 숨어있다. 재건축부담금이다. 이는 조합설립~준공 기간 해당 지역 평균을 초과하는 집값 상승분의 일부를 현금으로 내는 것이다. 본지가 정비계획의 사업비 등을 기준으로 현재 시점에서 추정한 결과 가구당 평균 부담금이 벌써 1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조합설립 이후 가격이 급등한 영향이다.

압구정 아파트값 강세는 더 이어질 것 같다. 요즘 잠깐 문을 연 ‘반짝 시장’에 수요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강남구가 투기과열지구여서 조합 설립 이후 거래가 제한된다. 다만 조합 설립 이후 3년이 지나도록 다음 사업단계인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지 못하면 거래가 허용되는데 지금이 그때다. 2021년 2~4월 조합 설립을 한 4개 구역의 거래 제한이 지난해 풀렸다. 조합 설립 전인 2020년 431건이던 거래가 조합 설립 후인 2022년 39건까지 줄었다. 거래가 허용된 지난해 323건을 기록했고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230여건으로 크게 늘었다. 시공사를 선정하고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면 다시 거래 문이 닫히기 때문에 압구정 재건축 단지 입성을 꿈꾼다면 서둘러야 할 판이다. 재건축 거래 규제가 되레 매물 희소가치를 높여 가격 거품을 조장하는 셈이다.

압구정동 재건축은 돈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하는 '쩐'의 전쟁이다.



안장원([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