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진 촬영에 임한 류진 풍산그룹 회장, 문홍식 KPGA 고문, 김원섭 KPGA 회장, 야마나카 히로시 JGA 최고 운영 책임자, 강형모 KGA 회장, 문성욱 KPGA 프로(왼쪽부터).
[OSEN=강희수 기자] “인도적으로 생각했을 때 일본 이름보다는 한국 이름으로 남는 게 옳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과거 제국주의 역사가 벌려놓은 한-일간의 인식 차이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인도주의'로 쉽게 하나가 되는 사례가 스포츠계에서 나왔다.
제국주의 시절이던 1941년, 남자 골프 ‘일본오픈’의 우승자인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가 ‘연덕춘’으로 정정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KPGA(한국프로골프협회), KGA(대한골프협회) 그리고 일본의 JGA(일본골프협회)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마음을 하나로 모았을 뿐인데, 수월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 선수 고 연덕춘, 역사와 전설을 복원하다'는 타이틀의 기념식이 열렸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를 바로잡는 행사인 만큼 KPGA, KGA는 물론이고 JGA의 고위 관계자도 참석해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1958년 대한민국 최초의 프로골프 대회인 ‘KPGA 선수권대회’에서 초대 왕좌에 올랐고 이후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아 국내 1세대 프로골프 선수들을 양산했다. 1968년 KPGA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2대 KPGA 회장도 역임했다. KPGA는 연덕춘 고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저타수상을 ‘덕춘상’으로 명명해 1980년부터 KPGA 투어 선수를 대상으로 시상하고 있다.
연덕춘 고문은 일본에서 선수로 크게 성공한 업적도 갖고 있다. 1941년 ‘일본오픈 골프선수권대회(이하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기록이다.
한국인 최초의 ‘일본오픈’ 우승이자 한국 골프 선수가 해외 무대에서 거둔 첫 승이었다. 연덕춘 고문의 ‘일본오픈’ 우승은 故 손기정 옹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수상과 함께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위상을 크게 알린 역사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후 일본오픈 한국인 우승자의 역사는 한장상(1972년), 김경태(2010년), 배상문(2010년)이 잇고 있다.
하지만 일본 골프사에서 ‘연덕춘’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41년 ‘일본오픈’ 우승자는 일본인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로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작년 10월부터 KPGA, KGA 중심으로 펼쳐졌다. JGA의 반응도 유연했다. 지난 4월 일본골프협회는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의 표기를 연덕춘, 국적을 한국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국내 양대협회에 전해왔다.
광복절을 며칠 앞둔 8월 12일,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 선수 고 연덕춘, 역사와 전설을 복원하다'는 기념식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게 된 경과다. 84년만에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가 ‘연덕춘’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마무리되는 현장이었다.
야마나카 히로시 JGA 최고 운영 책임자(왼쪽)와 김원섭 KPGA 회장이 복원된 트로피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행사에 JGA를 대표해 참석한 야마나카 히로시 최고 운영 책임자는 “1937년에 시작한 일본오픈이 올해로 90회를 맞는다. 1941년 우승한 연덕춘은 당시 정치적 상황에 따라 노부하라 도쿠하루로 불렸다. 하지만 분명 연덕춘은 한국인이고 한국인 최초의 일본오픈 우승자였다”고 전제하고 “작년 KPGA KGA로부터 역사를 바로잡고 싶다는 요청을 받고 일본골프협회 내부의 심도 깊은 논의 결과 만장일치로 모든 기록을 연덕춘으로 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만장일치'의 과정을 다시 물었더니 “1941년 당시 역사적 상황을 상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인도적으로 생각했을 때 일본 이름보다는 한국 이름으로 남는 게 옳다고 모두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마나카 히로시 최고 운영 책임자는 더 나아가 “현재 일본 골프 명예의 전당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외국인 선수도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돼 있다. 연덕춘도 최초의 한국인 우승자라는 의미로 후보에 올라 있다”고 말했다.
이 날 기념식에서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순서도 있었다. 바로 연덕춘 고문의 ‘일본오픈’ 우승 트로피 복원이다. 아쉽게도 연덕춘 고문의 우승 트로피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유실됐다. 일본의 골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본오픈’ 트로피도 사실은 일본골프협회에서 복원한 것이다.
[사진]OSEN DB.
KPGA는 사진 등 남아 있는 각종 자료를 토대로 고증을 하고, 또 일본골프협회의 도움도 받아가며 ‘일본오픈’ 트로피를 복원했다. 복원된 트로피는 12일의 기념식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트로피는 향후 독립기념관에 기증될 예정이다.
복원된 트로피.
김원섭 KPGA 회장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님, 이케타니 마사나리 일본골프협회 회장님과 임직원 여러분께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며 “앞으로도 KPGA는 올바른 한국골프 역사를 찾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강형모 KGA 회장은 “연덕춘 선수의 국적과 이름이 바로잡힌 것은 한국 골프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일"이라며 “이를 통해 한일 양국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넓히는 의미 있는 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故연덕춘 고문의 이손 문성욱 KPGA 프로도 참석했는데 문성욱 프로는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을 못했다. 애를 써 주신 양 협회에 감사한다. 연덕춘 고문은 골프에 대한 열정이 유달랐던 분이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골프 연습을 하셨던 분이다. 하늘에서 이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야마나카 히로시 최고 운영 책임자는 이 날 행사의 의미를 한일 양국 관계에 견줘 풀이하기도 했다.
야마나카 씨는 “202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이러한 해에 이번 기념식을 치르게 돼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연덕춘 고문 외 한장상 고문과 김경태, 배상문 선수는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적이 있고 현재도 한국의 남녀프로골프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한일간의 스포츠 교류의 초석을 다져 주신 분이 바로 연덕춘, 한장상 고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이 함께 발전하며 좋은 라이벌, 친구로서 세계무대에서 빛나길 기대한다. KPGA와 KGA 그리고 한국 골프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원한다”고 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