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여부를 결정할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김 여사는 이날 영장심사 최후 진술에서 “결혼 전의 문제들까지 지금 계속 거론이 되고 있어 속상한 입장이다. 판사님께서 잘 판단해 주십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김 여사는 전직 대통령 부인 중 처음으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구속 피의자가 된다.
이날 오전 10시10분부터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 법정에서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영장실질심사는 4시간25분 만인 오후 2시35분쯤 끝났다. 오전 9시25분쯤 법원에 도착한 김 여사는 지난 6일 특검 출석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며 사과한 것과 달리 취재진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인 뒤 법정으로 입장했다. 영장 심사가 끝난 뒤 오후 3시쯤 법원청사를 나와 “혐의를 모두 부인하느냐” 등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서울 구로구 천왕동 서울남부구치소로 이동해 구인 피의자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영장심사에는 김 여사 측에선 최지우·채명성·유정화 변호사가,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해 온 한문혁 부장검사를 포함해 총 8명이 심사에 참석했다. 특검팀은 앞서 총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며 김 여사에 대한 구속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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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페이지 PPT로 구속 방어 나선 김건희 여사
의견서에는 지난달 2일 수사개시 이후 특검팀이 수사해 온 의혹을 총망라해 사건 개요와 수사 경과, 혐의 등을 담았다.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이미 수사가 상당 부분 진행돼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앞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개입, 건진법사 청탁 등 3개 사건을 ‘주요 범죄 혐의’로 담아 구속 가능성을 높이고, 추가적으로 의견서를 제출해 이외에도 수사 대상 의혹이 산적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이었다.
특검팀은 또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제한된 수사 기간(90일, 연장시 최장 150일) 내에 특검법에 명시된 16개의 수사대상에 더해 인지된 관련 사건까지 총 ‘16개+α’의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선 핵심 피의자인 김 여사에 대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단 점도 강조했다.
구속 필요성을 피력하는 특검팀 공세에 맞서 김 여사 측에선 80페이지 분량의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준비했다. 이 자료는 김 여사는 단순 투자자일 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기존 입장에 더해 명태균 공천개입 및 건진법사 청탁 의혹에 대해서도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김 여사는 이날 심사에서 “판사님께서 현명하게 잘 판단해주시리라 믿는다”는 취지의 발언 이외에 직접 소명에 나서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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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 '히든카드' 서희건설 자수서·진품 실물…"김건희 측에 목걸이 건넸다"
김 여사 측의 방어 전략에 균열이 생긴 건 특검팀이 예고 없이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의 자수서를 꺼내 들면서다. 자수서는 2022년 이 회장이 김 여사 측에 6000만원 상당의 반 클리프 에펠 목걸이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뇌물 공여자가 스스로 혐의를 인정함에 따라 수수자로 지목된 김 여사는 궁지에 몰렸다. “목걸이는 2010년 홍콩에서 구입한 모조품”이라는 진술이 거짓말이란 사실이 구속 여부를 가르는 영장실질심사 도중 들통났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김 여사 측에 건넸다고 인정한 이 목걸이는 2022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당시 김 여사가 착용한 모습이 공개되며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공직자윤리법 위반) 의혹이 불거졌고, 특검 수사 결과 이 목걸이의 구매자가 이 회장의 비서실장이란 점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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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서 들통난 거짓진술·증거인멸
특검팀은 이 목걸이가 서희건설 측이 김 여사에게 건넨 뇌물일 가능성을 의심해 왔다. 이 회장의 맏사위인 박성근 전 검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합류하고, 이후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임명된 것이 목걸이 선물의 대가였을 수 있어서다. 특검 수사가 확대되자 이 회장은 선제적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자수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목걸이 진품과 함께 김 여사의 오빠 김진우씨 장모 자택에서 발견한 가품 목걸이를 동시에 꺼내 들기도 했다. 특검팀이 공개한 진품 목걸이는 2022년 이 회장이 김 여사에게 선물한 이후 돌려받은 제품이다. 이와 함께 공개된 가품 목걸이는 김 여사가 진품을 서희건설 측에 되돌려준 이후 “나토 순방 때 착용한 목걸이는 가품”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별도로 구매한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선 김 여사가 특검 조사에서 목걸이 의혹과 관련해 거짓 진술로 일관했고,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가품을 구입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점까지 드러난 셈이다.
이와 관련 오정희 특검보는 이날 영장실질심사 종료 직후 브리핑에서 “서희건설 측이 (김 여사에게) 교부하였다가 몇 년 뒤 돌려받은 진품 실물을 임의제출 받아 압수했다”며 “(윤 전 대통령) 취임 직후 목걸이를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음에도 (김 여사는)수사 과정에서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가품이 인척의 주거지(오빠의 장모 집)에서 발견된 경위를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는 영장실질심사 직후 법정을 빠져나와 “서희건설 회장이 목걸이 전달했다고 제출한 자수서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가방과 시계도 받지 않았다는 입장인가” 등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김 여사는 구속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구금 상태로 남부구치소에 대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