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방송, 탈주 노동자들 인터뷰…러 파견 노동자 1년 새 12배↑
'충성 수수료' 떼고 나면 월 수입 100달러…그마저 못 받을 수도
"北노동자들, 러 건설현장서 하루 18시간 363일 노예처럼 일해"
영국 BBC 방송, 탈주 노동자들 인터뷰…러 파견 노동자 1년 새 12배↑
'충성 수수료' 떼고 나면 월 수입 100달러…그마저 못 받을 수도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러시아에 파견돼 김정은 정권에 외화를 벌어다 주는 북한 노동자들이 엄격한 감시와 통제 속에 거의 노예 취급을 받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가 만난 탈주 북한 노동자 6명 등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의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 등에서 하루 18시간 작업에 투입된다.
보통 일과는 오전 6시부터 그 이튿날 오전 2시까지다. 몇 시간의 쪽잠 후 오전 6시에 다시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1년 동안 휴일은 이틀뿐이다.
노동자들은 파견 기간 내내 현장을 떠나기 어렵다. 합숙소도 건설 현장의 비좁은 화물 컨테이너 등이다.
자유는 극도로 제한된다. 북한 보안 당국 관계자들이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외출은 한 달에 한 번뿐이다.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조를 짜서 외출해야 한다. 원래는 2명씩 외출할 수 있었는데 2023년부터는 감시가 강화되면서 5명씩 조를 짜야 한다고 한다.
북한 노동자의 해외 취업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위반이다. 안보리 결의에 따라 2019년 이후 북한 노동자의 해외 취업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러시아로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의 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한국 정보당국이 BBC에 밝힌 바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에만 북한 노동자 1만 명이 러시아로 파견됐으며, 북한이 러시아와 공개적으로 협력을 강화한 올해는 그 수가 5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정부의 통계를 봐도 지난해 러시아로 입국한 북한 주민은 1만3천명으로 전년 대비 12배로 폭증했다. 대다수는 학생 비자로 입국했는데, 이는 노동자 파견을 금지한 유엔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3년 반 동안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노동력이 부족해진 러시아는 북한에서 파견받은 노동자들로 그 공백을 채우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황폐해진 지역을 재건하는 작업에도 북한 파견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
국내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BBC에 "러시아는 현재 극심한 노동력 부족 사태를 겪는데, 북한이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해준다. 북한 노동력은 값싸고 매우 성실하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에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러시아 파견직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정권의 신뢰를 받는 인물들만이 엄격한 심사를 거친 뒤에야 파견자로 선정될 수 있다.
그런데 북한 노동자들이 현지에서 극악한 환경을 버티고 벌어들이는 돈은 월 100∼200달러(약 13만∼26만원)에 그친다. 소득 대부분을 북한 정권에 '충성 수수료' 명목으로 뜯기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노동자들이 바로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술·담배를 살 수 있는 용돈 정도로 극히 일부라고 BBC는 전했다. 나머지는 장부에 기록했다가 귀국 때 돌려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뜯기고 남은 돈도 보장받지는 못한다. 한 북한 노동자는 '국가에서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번 돈을 아예 받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 된 후, 목숨을 건 탈주를 결심했다.
'태'라는 가명으로 BBC 인터뷰에 응한 한 탈주 노동자는 중앙아시아 출신 러시아 노동자들의 작업량은 북한 파견자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임금은 5배나 된다는 것을 알고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 현지에서 '노예'라는 놀림을 당한다고 BBC는 전했다.
태 씨는 용돈을 모아 몰래 산 중고 스마트폰을 통해 한국 노동자들의 평균 벌이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고는 탈출을 결심했다고 BBC에 밝혔다.
그는 어둠을 틈타 숙소를 빠져나온 뒤 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행에 성공했다.
북한 당국은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파견 노동자들의 자유를 더욱 억압하고 있다. 서로를 감시하는 외출 통제 강화도 이런 조치의 일환이다.
이런 조치는 나름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를 탈출해 한국으로 들어오는 북한 주민들이 최근 연 10명 정도로 과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밝혔다고 BBC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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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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