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제 관세는 단순한 무역 전쟁의 무기를 넘어 재정의 기둥이다. 주요 교역국에 부과한 15% 관세는 향후 10년간 2조6000억 달러의 세수를 창출하며 미국 재정의 판을 바꿀 것이다.
관세 수입은 이미 통계에 뚜렷하게 반영됐다. 올해 들어 관세 수입은 1300억 달러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0억 달러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미국이 모든 품목에 15%의 관세를 부과하고, 2024년 3조3000억 달러였던 수입액이 올해도 유지된다고 가정해 보자. 1조 달러 규모의 수입품은 미국·멕시코·캐나다(USMCA) 무역협정 등으로 관세가 면제된다 하더라도, 나머지 2조3000억 달러의 수입품에 15% 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관세 세수는 3400억 달러다.
최근 3년 평균 대비 추가 세수는 연간 약 2600억 달러로 GDP의 1% 수준이다. 향후 10년간 누적 효과는 2조6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미 의회예산처(CBO)가 6월 발표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으로 인한 10년간 재정수지 적자 증가분(2조4000억 달러)과 맞먹는다. 그런데도 CBO는 관세 인상의 효과를 공식 전망에 반영하지 않았고, 정부 역시 관세 부담이 외국 생산자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관세 부담의 상당 부분이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관세와 같은 간접세는 과세 범위가 넓고 징수가 용이하며, 근로 의욕을 직접 저해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에 상대적으로 큰 부담을 지우는 ‘역진성(regressivity)’이라는 구조적 한계도 명확하다. 해외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 일시적으로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속이 어렵다. 결국 미국 기업도 세금 부담을 흡수하지 않게 되면 소비자 부담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일부 경제지표와 고용 통계에서 둔화 조짐이 나타나지만, GDP 대비 5~6% 수준의 재정 적자가 이어지는 등 재정정책이 여전히 확장적이라 당분간 경기가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실제로 고용 지표가 다소 조정됐음에도 실업률은 여전히 낮다. 한편, 관세 인상분이 물가에 서서히 반영되면서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 인하 시기를 더욱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다. 현재 정책금리는 경제 상황에 적합한 자연금리에 근접해 있어 급격한 경기 둔화가 발생하지 않는 한 추가 인하 여력은 크지 않다.
생산성이 혁신적으로 향상되지 않는다면 정부는 지출 삭감이나 추가 증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번 대규모 관세 부과는 선진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간접세 비중 확대의 서막이자 미국 재정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