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의 한 일반고에서 줄곧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수시(일반전형)로 2014년 서울대 종교학과 입학, 페미니스트이자 채식주의자. "
4년 차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이제 막 생애 첫 장편 소설을 낸 작가 원소윤(30)을 가장 무미건조하고 매력 없게 표현하는 한 줄 요약 아닐까. 어쩌면 누군가에겐 이유 없는 적대심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는 한 줄 소개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남자 좋아하는 못생긴 페미?
클럽 갈 친구 없는 외로운 찐따?
흔한 서울대생의 특별한 코미디
학벌 자학도 사랑 있어 가능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페미니즘한테 뭐라고 좀 하지 마세요. 페미니즘 때문에 제 얼굴이 이렇게 된 게 아니에요. 순수하게 못생긴 거예요. 채식 때문에 제 얼굴이 이렇게 된 건 약간 맞아요. 채식주의자 이미지 실추는 여기까지만 하고요. 저는 서울대 출신입니다. 서울대생처럼 생겼다, 그런 말은 들어 본 적 없습니다. 서울대 갔어야 할 것처럼 생겼다는 말은 자주 들어요. " (원소윤의『꽤 낙천적인 아이』에 실린 '오픈 마이크' 중)
"(그 어렵다는) 서울대는 들어갔지만 (아무나 간다는) 홍대 클럽엔 못 들어간다"는,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는 서울대 '찐따' 자학개그 쇼츠 영상 하나하나가 순식간에 각각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단숨에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씬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원소윤씨를 지난달 30일 만났다. 아무런 등단 이력 없는 그가 메이저 출판사(민음사)에서 책을 냈다기에 최근 얻은 유명세에 편승한 가벼운 에세이인가 했더니, 뜨기 전 탈고한 자전적 장편 소설이었다. '선망의 엘리트'가 '경멸의 찐따'를 자처해 공감을 끌어내고, '슬픈 사실'을 '웃긴 허구'라 퉁치며 아픈 가족사와 본인의 상처를 감추는 낙차 큰 그의 코미디를 이 책도 똑같이 닮아있었다. 유쾌한 모순으로 반전을 거듭하는 원소윤의 인생 키워드 셋을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페미니스트
지난 밤 만취 귀가길에 넘어졌다. 건재를 과시하려고 파워 워킹한 게 문제였는지 급체했다. 애인은 나를 눕히고 팔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자꾸 방귀가 나오려고 해. " 난 애가 탔는데 애인은 반가워했다. "그럼 잘되고 있는 거야. 중완혈을 누르면 가스가 배출되는 게 맞거든. " 나는 속수무책으로 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풍, 핑, 뽕, 픽,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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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치스러웠다. 지압을 멈추고 애인은 말했다. "너 이렇게 다친 거 옐로카드야. " 물었다. 레드카드 받으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고. "그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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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드 두 장이지. " 애인은 사랑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꽤 낙천적인 아이』중)
누군가 물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냐고. 딱 한 문장만 허락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운 좋은 사람. 타워크레인 기사 아버지를 둔 블루칼라 배경이 뭐 그리 운이 좋으냐고
?
귀인을 만나 늘 꿈꿔온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그리고 작가가 됐으니 하는 말이다. 헤드라이너급(간판급) 코미디언 손동훈 오빠가 "네 코미디에 구조가 있다, 계속해볼 의향 있느냐"며 어설픈 내 첫 워크숍 무대에서 코미디 재능을 발견해주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이 직업을 선망만 하고 있을지 모른다. 문학평론가인 편집자 박혜진 님이 내가 무턱대고 보낸 원고를 발견해주지 않았다면 난 3~4년 시도에도 끝내 닿지 못한 신춘문예에 여전히 도전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만난 이런 숱한 귀인 가운데 누가 뭐래도 최고는 서울대 음악 봉사 동아리에서 만난 한 살 연상의 애인이다. 그는 나를 발견했고, 내게 사랑을 알려줬다.
"짝사랑 오빠와 놀러갔는데 운 좋게도 모텔에 방이 하나만 남은 거예요. 그날 첫 경험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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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숙한 건 진짜 처음이었어요. " "혼자 살아요, 자취해요. 제대로 어필이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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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에 도둑이 들었어요. "(유튜브 '메타코미디클럽') 코미디 무대에선 이렇게 외로운 서울대 찐따 원소윤이지만 현실 속 나는 대학 2학년 때부터 사귄 수학교육과 교수 애인과 11월 결혼한다. 공부 잘하고, 축구부 주장할 만큼 운동도 잘하는 완전 짱. 무엇보다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언제나 내 편이다. 공연 보러 올 때마다 "멋있어, 멋있어"를 외치며 엄청 응원해준다. 정말 복이 굴러들어왔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인하면 따라오는 오해, 즉 남자친구 없을 거라는 편견을 깨는 스릴러 급반전인가. 맞다. 난 남자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서울대
"이분은 무려 서울대, 서울대 출신 여성 코미디언, 원소윤!"(『꽤 낙천적인 아이』에 실린 '라이브 클럽' 공연 중) "비도 오고 하니까 무서운 얘기 하나 들려 드릴게요. 자정 무렵 문제집 뒤쪽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온 거예요. 저는 그날 처음 봤는데 너무 놀라서 식은땀이 줄줄 나고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침묵) 서울대에서는 빵빵 터지는 공감 유머인데 아무도 몰라 주시네요. 여러분, 섭섭해요. "
코미디언 된 후 만난 어떤 분이 "서울대 포기하고 왜 이런 커리어를 택했느냐"고 물었다. 난 "나만큼 서울대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포기 운운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서울대 출신 코미디언이라고 하면 미래가 약속된 화려한 커리어를 박차고나와 소박한 꿈만 좇으며 무슨 대단한 희생이라도 하는 양 생각하는데, 실제론 나만큼 이 학벌을 잘 써먹는 사람이 없기에 면목이 없다. 진심이다.
대중은 내 서울대 학벌을 선망하는지 몰라도, 난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선망해왔다. 다만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2022년 11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양다솔의 '스탠드업 코미디 워크숍'에 참가했다가 아예 이 길로 들어섰다. 다솔 작가는 만나자마자 대뜸 "진짜 서울대면 졸업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했다. 아이디·비밀번호 찾아 서울대 포털(MYSNU)에서 뽑아 보내줬다. 그저 의심이 많은가 했지 서울대가 특별하다 여기진 않았다. 오히려 워크숍 후반 다솔 작가가 "김연아의 등장"이라며 한껏 치켜세우길래 "평생 어디 가서 '김연아' 소리 듣겠나, 여기 뭔가 있다" 싶어 눌러앉았다.
아무나 짧게 자기 코미디 선보이는 오픈 마이크에서도 재밌는 소재 같지 않아 서울대 농담은 잘 안 했다. 그런데 호스트가 날 호명할 때마다 서울대 얘기를 하길래 올 초 큰 채널(유튜브 '메타코미디클럽')에서 서울대 농담을 한번 짜봤는데 조회 수가 빵 터졌다.
서울대 출신 연예인은 많다. 코미디언도 물론 있다. 그런데 서울대에선 흔하디흔한 나 같은 '찐따'가 왜 대중에 먹혔을까.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 '환승연애'의 현규나 '솔로지옥' 슬기 같은 서울대 킹카·퀸카 보면서 속상했던 사람들 마음을 내가 어루만져줬나. 아니면 서울대 나왔는데 화려한 인맥은커녕 결혼식 올 친구도 거의 없다는 스릴러 급반전이 사람들을 안도하게 만들었나. 맞다. 난 클럽 같이 갈 힙한 친구 하나 없는 어리숙한 서울대다.
콤플렉스
수능이 끝나자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야 겨울의 파도 풀이자 여름의 스키장, 비수기가 시작됐다. 하루는 학교 강당에서 '메이크업' 강연을 했다. 강사는 대표로 메이크업 받을 학생을 찾았다. 수능이 끝난 이래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못생긴 범생이였다. 피부가 밝아지고 눈이 커지는 시시각각을 노출하는 건 굴욕이었다. 아니, (화장해도) 피부가 도무지 밝아지지 않고 눈이 커지지 않는 시시각각을 노출하는 게 진짜 두려웠지만 반장인 나는 결국 강단 위에 올랐다. 강사님이 '짜잔!'하고 메이크업을 마쳤는데 애들의 '우와!' 감탄은 없었다. (『꽤 낙천적인 아이』중)
20대 초반엔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집안 형편 탓에 못 누려본 문화 자본이며 포기한 해외여행도 그랬지만, 외모가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쌍꺼풀 해야 하나, 턱을 손봐야 하나. 맨날 그런 생각 했는데 수술할 용기는 없었다. 무섭기도 했지만, 솔직히 한다고 달라지겠나 싶은 체념도 있었다.
식물원 전시해설사, 시립상담센터 활동가, 출판사 편집자 등 고액 연봉은 아니어도 직장생활 몇 년 하며 경제적 콤플렉스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대학 졸업 후 첫 월급 받고는 "나 완전 패리스 힐튼"이라며 부모님 선물 사고 가보고 싶었던 레스토랑·카페에서 비싼 밥이랑 디저트 원 없이 먹었는데, 글쎄 딱 100만원 썼다. 행복을 채우는 분모가 굉장히 작구나, 콤플렉스가 아니라 행복이구나, 를 깨달았다.
이제 서른. 머리로는 콤플렉스 타령할 나이는 지났다는 걸 아는데 외모 콤플렉스는 극복 못 했다. 혹자는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탈코르셋을 한 게 아니라 코르셋을 어떻게 차야 하는지 몰라요"라거나 "딱 태어났는데 엄마가 저라면 일단 좀 배고플 것 같아요, 보시다시피
…
"라는 식의 성적 농담까지 능청맞게 하는 날 보고 외모 콤플렉스 없는 줄 안다. 천만의 말씀. 아직도 거울은 최대한 안 보고 산다.
성역 없는 농담을 정말 좋아한다. 고작 내 외모 따위가 아니라, 아무리 심각한 주제라도 시시껄렁하게 다루면서 설득력 있게 선을 잘 넘을 때 주는 해방감이 너무 좋다. 요양원에선 노인을, 초등학교에선 초등생을 웃기는 스펙트럼 넓은 코미디언이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 속 초자 코미디언인 나는 무대에서 최소한의 분당 웃음 횟수(LPM·Laugh per minute)도 못 채워 자존감이 바닥으로 처박히곤 한다. 그래도 또 농담을 쓰고 또 무대에 오른다. 그게 처박힌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그게 인생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