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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산재사고 났다고 임직원 줄사표…기업만 닦달할 일인가

중앙일보

2025.08.12 08:28 2025.08.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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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 발생 건설사에 고강도 징벌적 제재 예고



기업 책임 엄중하나 구조적 문제 같이 풀어야

‘산재와의 전쟁’에 나선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후진적인 산재 공화국을 반드시 뜯어고치도록 해야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산재 관련 기업의 입찰 자격 제한 영구 박탈과 과징금 제도 도입, 안전관리 미비 사업장 신고 시 파격적인 보상금 지급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산재 척결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올해 시공 현장에서 4건의 사망사고와 지난 4일 감전에 따른 노동자 의식불명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언급하는 한편, 건설면허 취소와 공공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DL건설의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튿날인 지난 9일에는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산재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며 정부도 산재 처벌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용부와 경찰은 어제 근로감독관과 경찰 70여 명을 투입해 포스코이앤씨 본사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산재사고를 낸 건설사에 대한 고강도 징벌적 제재를 예고한 대통령과 정부의 서슬 퍼런 기세에 업계는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DL건설의 대표이사와 모든 임원, 현장소장·팀장을 포함한 80명이 지난 11일 사표를 냈다. 공사 현장은 올 스톱이다. DL건설과 모기업인 DL이앤씨는 120개가 넘는 현장 작업을 전면 중단했다.

대통령의 말대로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산재를 막고 줄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업을 닦달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산재 발생 빈도가 높은 건설과 제조업은 원청과 하청으로 이뤄진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해 있다. 최저가 입찰제와 공기 단축 압박은 안전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 노동자 증가에 따른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현장 근로자 고령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본질적이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기업에만 윽박지르는 건 한계가 있다.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자는 827명이다. 하루에 2.4명꼴로 발생했다. 산업 현장에서 안전사고는 발생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산재사고를 제로(0)로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징벌적 제재에만 집중하면 건설·제조업 생산 현장의 위축은 피할 수 없다. 산재 발생을 감추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부작용도 낳을 것이다. 이미 산재 은폐율(2021년)은 66.6%에 이른다. 3건 중 2건은 감춰졌다는 이야기다.

산재가 발생하면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산재를 막을 수 없다. 산재 예방을 위한 각종 제도 지원과 시스템 구축, 하도급 체제 정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징벌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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