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12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남부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이어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 수감된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김 여사는 윤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샤넬백 수수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떨쳐내는 듯 했지만 김건희 특검팀(민중기 특별검사)의 수사 개시 42일 만에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김 여사는 이날 오전 10시10분부터 4시간25분간 중앙지법 서관 321호 법정에서 열린 영장심사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변호인들에 소명을 맡긴 채 침묵했다. 특검팀이 파워포인트(PPT) 화면을 띄워 구속 필요성을 강조할 땐 눈을 질끈 감았다. 김 여사는 최후진술에서야 “결혼 전의 문제들까지 지금 계속 거론되고 있어 속상하다. 판사님께서 잘 판단해 주십사 부탁드린다”는 짧은 입장을 남겼다.
이날 심사엔 김 여사 측에서 최지우·채명성·유정화 변호사가,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해 온 한문혁 부장검사를 포함해 총 8명이 참석했다. 김 여사 변호인단은 특검팀에 맞서 미리 준비한 80여 페이지 분량의 PPT 자료를 활용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검 꺼낸 히든카드 '자수서'…"김 여사에 직접 목걸이 선물"
김 여사 측의 방어 전략에 균열이 생긴 건 특검팀이 예고 없이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의 자수서를 꺼내 들면서다. 자수서는 2022년 이 회장이 김 여사 측에 6000만원 상당의 반 클리프 에펠 목걸이를 전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자수서에는 또 “대선 직후 취임 축하용 선물로 아크로비스타 식당에서 김건희 여사를 만나 직접 목걸이를 건넸다. 첫 만남 땐 조찬기도회 참석을 요청했고, 이후 다시 만나 사위가 윤석열 정부에서 일할 기회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는 취지로 청탁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김 여사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직전 이를 다시 이 회장에게 반납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김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특검법 논의가 재점화하자 특검 수사를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반납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 여사 스스로 목걸이 선물이 뇌물이란 점을 인지하고 있었단 의미이기도 하다.
뇌물 공여자가 스스로 청탁 혐의를 인정함에 따라 수수자로 지목된 김 여사는 궁지에 몰렸다. “목걸이는 2010년 홍콩에서 구입한 모조품”이라는 진술이 거짓말이란 사실이 구속 여부를 가르는 영장실질심사 도중 들통났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김 여사 측에 건넸다고 인정한 이 목걸이는 2022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당시 김 여사가 착용한 모습이 공개되며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공직자윤리법 위반) 의혹이 불거졌고, 특검 수사 결과 이 목걸이의 구매자가 이 회장의 비서실장이란 점이 드러났다. 특검 수사가 확대되자 이 회장은 선제적으로 혐의를 인정하는 자수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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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홍콩서 구매한 모조품" 거짓 진술 들통
특검팀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목걸이 진품과 함께 김 여사의 오빠 김진우씨 장모 자택에서 발견한 가품 목걸이를 동시에 꺼내 들기도 했다. 특검팀이 공개한 진품 목걸이는 2022년 이 회장이 김 여사에게 선물한 이후 돌려받은 제품이다. 이와 함께 공개된 가품 목걸이는 김 여사가 진품을 서희건설 측에 되돌려준 이후 “나토 순방 때 착용한 목걸이는 가품”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별도로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오정희 특검보는 이날 영장실질심사 종료 직후 브리핑에서 “서희건설 측이 (김 여사에게) 교부하였다가 몇 년 뒤 돌려받은 진품 실물을 임의제출 받아 압수했다”며 “(윤 전 대통령) 취임 직후 목걸이를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음에도 (김 여사는)수사 과정에서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했고, 가품이 인천 주거지에서 발견된 경위를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선 김 여사가 특검 조사에서 목걸이 의혹과 관련해 거짓 진술로 일관했고,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가품을 구입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점까지 드러난 셈이다. 증거인멸 가능성은 구속 여부를 가르는 최우선 기준이란 점에서 이봉관 회장의 자수서는 김 여사 구속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심문을 진행한 정재욱 부장판사는 이날 영장심사에서 김 여사를 지목해 “목걸이를 받은 것이 사실이냐”며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했다. 목걸이 수수 여부는 정 부장판사가 이날 영장심사에서 김 여사에게 물은 유일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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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초유의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이날 오전 10시 10분 시작된 영장실질심사는 4시간 25분 만인 오후 2시 35분쯤 끝났다. 김 여사는 영장 심사가 끝난 뒤 오후 3시쯤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서울 구로구 천왕동 서울남부구치소로 이동해 구인 피의자 대기실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와 동시에 남부구치소 측은 대기하던 김 여사를 곧장 수용실로 인치했다. 특검팀은 최장 20일간 김 여사를 구속 상태로 수사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구속영장 청구 당시 주요 범죄 혐의로 거론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개입, 건진법사 청탁 의혹 등 수사가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된 의혹 사건을 중심으로 1차 기소한 뒤 나머지 사건들에 대한 추가 수사를 통해 순차적 추가 기소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