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경문 감독이 KBO리그 역대 3번째 1000승 감독 반열에 올랐다. /한화 이글스 제공
[OSEN=대전, 이상학 기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67) 감독은 후반기 들어 개인 통산 1000승 관련 질문이 나올 때마다 칼같이 말을 끊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괜히 그거 때문에 팀 분위기가 나빠지면 안 된다”며 개인 기록보다 팀을 먼저 앞세웠다. 통산 999승으로 맞이한 지난 12일 대전 롯데전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한화는 2-0으로 승리했고, 김경문 감독은 개인 통산 1000승 위업을 달성했다. 김응용(1554승), 김성근(1388승) 전 감독에 이어 KBO리그 역대 3번째 1000승 사령탑 반열에 오른 김경문 감독은 그라운드에서 축하 자리를 마다하고 들어갔다. 감독실에서 손혁 단장과 코칭스태프, 주장 채은성과 최고참 류현진으로부터 축하 꽃다발, 트로피를 받으며 조촐하게 넘어갔다.
김 감독은 구단을 통해 “먼저 기회를 주신 (김승연) 구단주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많은 것을 지원해주신 구단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저 개인에게는 너무나도 의미 있는 기록이지만 우리 팀은 현재 어느 해보다 순위 싸움이 치열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매 경기 1승, 1승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 시즌이 끝날 때까지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화 김경문 감독(오른쪽)이 채은성과 류현진에게 1000승 기념 꽃다발과 기념구를 받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김 감독은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 했지만 사령탑 1000승은 단순 기록으로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갈 게 아니다. KBO리그 44년 역사 통틀어 감독대행 포함 총 107명의 감독들이 있었는데 1000승을 달성한 사령탑은 단 3명. 2.8%에 불과하다.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 총 20명인데 그보다 훨씬 적은 숫자다.
2004년 두산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김 감독은 2011년 6월 중도 퇴진 전까지 8시즌 통산 512승을 거뒀다. 이어 신생팀 NC 지휘봉을 잡고 2013년부터 2018년 6월 중도 퇴진 전까지 6시즌 통산 384승을 쌓았다. 이후 국가대표 감독과 야인 생활을 거쳐 지난해 6월 한화 사령탑으로 컴백, 2시즌 동안 104승을 더하며 대망의 1000승 고지를 밟았다. 통산 1894경기 1000승860패3무(승률 .538).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선수 보는 안목과 육성 능력이 탁월한 김 감독은 두산의 화수분 야구를 이끈 뒤 NC를 단기간 강팀으로 조련했다. 두산에서 6번, NC에서 4번으로 총 10번의 가을야구를 이끌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 한을 풀지 못했다. 두산에서 3번, NC에서 1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전부 준우승으로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OSEN=잠실, 조은정 기자] 한화 김경문 감독이 관중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2025.07.22 /[email protected]
1000승 이상 거둔 3명의 김 감독을 포함해 김인식(978승), 김재박(936승), 강병철(914승), 김태형(769승), 김영덕(707승), 류중일(691승), 염경엽(634승), 조범현(629승), 이광환(608승), 선동열(584승), 이강철(511승) 등 14명의 감독들이 500승 이상 기록했는데 그 중 유일하게 김 감독만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우승 없는 1000승은 김 감독에게 어쩌면 컴플렉스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지도력을 인정받았기에 3개 팀에서 16시즌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감독은 ‘파리 목숨’에 비유될 정도로 자주 바뀐다. 1000승은커녕 1000경기 이상 지휘한 감독도 13명밖에 되지 않는다.
역사가 깊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통산 1000승 감독이 총 66명이다. 그 중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1000승 감독이 26명이나 된다. 최다승은 진 마우치 감독의 1902승으로 1960~1987년 26시즌 동안 4개 팀을 이끌었다. 현역 감독 중에선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이 2003년부터 올해까지 5개 팀에서 22시즌 통산 1656승을 기록 중이다. 우승이 없어도 충분히 명장 대우를 받고 있다.
김 감독도 명장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래도 우승이라는 마지막 한까지 푼다면 명실상부한 최고의 명장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통산 2183승을 기록하고 은퇴한 ‘덕장’ 더스티 베이커 전 감독도 마지막 팀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2022년 월드시리즈 우승 한을 풀었다. 당시 73세 최고령 나이로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베이커 감독은 2093승에서 무관을 떨쳐냈다.
만 67세인 김 감독도 올해 기회가 왔다. 지난주 LG에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2경기차 2위로 여전히 선두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놓쳐도 선발투수들이 워낙 좋아 단기전에서 충분히 승부를 해볼 만하다. 그래도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가야 우승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건 분명하다. 시즌은 37경기 더 남아있고, 한 번 연승 무드를 타면 역전 기회가 올 수 있다.
한 달 반 동안 1위를 달리다 2위로 내려앉아 위기감이 커지긴 했지만 시즌 전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다. 7년 만의 포스트시즌은 확정적이다. 3번째 팀에서도 가을야구를 앞두고 있는 김 감독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준 코치들과 현장 스태프, 그리고 오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준 선수들에게 고맙고, 기쁨과 영광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한화 이글스 구단과 선수단 모두가 여태껏 잘해온 만큼 앞으로도 좋은 경기 펼쳐 가을야구에서 팬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드릴 수 있도록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