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원산지구 다녀온 러 관광객 "가이드가 긍정 후기 종용"
"호화롭지만 어색한 느낌…지도자 개인숭배로 옛 소련 시절 연상"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북한이 '국보급 관광 명소'로 내세우는 강원도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를 방문한 러시아인들은 호화로운 시설과 대접에 감탄하면서도 무언가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인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탓이다. 어딜 가도 동행하는 가이드는 긍정적인 내용의 후기를 남기도록 종용했다.
1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원산을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들의 방문기를 소개했다.
이들은 여행 내내 화려한 고층 호텔과 물놀이장이 마련된 이곳에서 푸아그라·반죽 치즈 등이 포함된 최고급 뷔페 식사를 즐겼다.
다리아 폴리시추크(22)는 "누군가 사진으로 보여줬다면 결코 북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외관상 여느 유럽 리조트들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도 미소를 띤 채 오갔고,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는 등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신문 콤메르산트의 기자인 아나스타샤 돔비츠카야는 "(원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러시아어를 알아듣고 심지어 완벽하게 말하기까지 했다"며 이들이 진짜 주민이거나 내국인 관광객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전했다.
돔비츠카야의 눈에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거리는 너무 한산했고, 똑같은 커플이 온종일 쉬지 않고 당구를 쳤다.
어떤 사람은 연신 담배를 피웠고, 다른 사람은 제방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했다. 또 베란다에 자리 잡은 이는 맥주를 홀짝거렸는데 컵에 담긴 맥주는 거의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주민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은 관광객들이 마치 유명인인 양 그들의 사진을 찍으며 "러시아, 러시아!"라고 외치기도 했다.
관광객들은 호텔 방에 있을 때를 빼고는 항상 가이드와 동행해야 했다. 가이드들은 이들을 성심성의껏 챙겼지만, 그러면서도 긍정적인 내용의 후기를 남기도록 종용했다.
나탈리아 피셰르(52)는 "가이드가 우리에게 '양국 간의 우정은 여러분이 대중들에게 전하는 내용, 우리에 대해 말하는 내용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지도자에 대한 개인숭배가 러시아인들에게 옛 소련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폴리시추크는 평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잡지를 책받침처럼 받쳐 양식을 작성하다가 주의를 받았다며 "잡지에 북한 지도자의 사진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상이나 초상화 앞에서 주민들이 경의를 표하며 절하는 모습을 봤다"며 "정말 소련 시절과 닮았다"고 말했다.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는 북한이 외화벌이를 위해 스페인 휴양도시 베니도름를 모델로 개발한 휴양지다.
지난달 초 이 관광지구를 개장한 북한은 당시 방북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이곳으로 초청한 이후 러시아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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