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강원 강릉시 홍제동의 한 카페. 한 손님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직원이 2L 생수의 뚜껑을 열더니 커피잔에 물을 담았다.
이어 손님이 쓴 커피잔은 식기세척기에 넣지 않고 한 곳에 모두 모아뒀다. 이 카페 직원이 정수기를 두고도 불편함을 감수하고 생수를 쓰는 건 물을 조금이라고 아끼기 위해서다.
카페 주인 김하늬(42)씨는 “오봉저수지 물이 바짝 마른 상황이라 정수기 물 대신 생수를 사서 쓰고 있다”며 “물이 많이 들어가는 식기세척기를 안 쓰려고 커피잔도 한꺼번에 모아 설거지한다”고 말했다.
인근 송정동의 한 음식점 정수기엔 ‘사용 불가’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이 식당은 원래 물통에 정수기 물을 담아 손님들에게 제공해왔는데 지난달 말부터 500㎖ 생수를 제공하고 있다. 하루 평균 손님에게 나가는 생수는 100개에 이른다.
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학덕(62)씨는 "강릉지역 가뭄이 심각해 수돗물 사용을 조금이라 줄이려고 생수를 사서 쓰기 시작했다"며 "매일 100개가 넘는 생수가 나가다 보니 하루 생수 구입비만 5만원이 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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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년 같은 기간 절반에도 못 미쳐
강릉지역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강릉의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인근 도마천 일대는 황톳빛 바닥이 드러난 상황이다. 물이 고여있던 일부 구간엔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기도 했다.
저수지 인근 오봉리 마을의 경우 물이 부족해 밭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이 마을의 경우 74가구 농가가 있는데 일부 농가는 물이 없어 옥수수 등 일부 밭작물의 수확을 포기했다. 유봉열(71)씨는 “지금은 밭에 깨를 심어놨는데 물이 부족하다 보니 작물이 잘 크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수율도 13일 기준 24.6%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다. 평년 같은 기간엔 66.8%, 지난해 같은 기간엔 39.3%였다. 이에 오봉저수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가 긴급 조치에 나섰다. 현재 농업용수의 경우 2일 급수 후 3일 단수를 시행해왔다. 하지만 오는 20일부터 3일 급수 후 7일 단수를 시행해 농업용수 제한 급수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김인열 한국농어촌공사 소장은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25% 이하로 떨어진 건 처음이라며 심각한 가뭄에 농업용수 제한 급수를 확대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봉저수지는 강릉지역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고 있다. 이 저수지에서 물을 공급받는 인구는 18만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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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재해대책본부 가동
강릉시는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25% 이하로 떨어져 재해대책본부를 가동한다. 상하수도사업소 대신 재난안전과에서 비상급수 업무를 맡는 등 강릉시가 비상 체제로 전환됐다.
당장 생황 용수에 대한 제한급수가 시행되는 건 아니지만 도심 190여 개 밸브 개도율을 조정해 수압을 더 낮춘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계속 비가 오지 않아 저수율이 15%까지 떨어지면 강릉 전 지역에 급수 제한 등의 조치와 함께 상시 상황실 운영, 인접 지자체 급수 지원도 추진된다.
생황 용수에 대한 급수 제한을 막기 위해 강릉지역 청년 상인들 사이에선 물 절약 캠페인이 확산하고 있다. 현재 45곳의 음식점 등에서 물 절약을 위해 수돗물 대신 생수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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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 시간 줄이는 게 효과 가장 커"
고성민 강릉청년소상공인협회장은 “음식을 조리하거나 설거지할 땐 물을 쓸 수밖에 없지만 먹는 물은 생수로 대체할 수 있어 물 절약에 동참하고자 자비로 생수를 구매해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강릉시의 가뭄을 해소할 당장의 뾰족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강릉시 연곡면에 약 3만6000명에게 생활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지하수댐을 건설 중인데 이 댐은 2027년 완공이 목표다.
오봉저수지를 준설해 ‘물그릇’을 키우는 방안과 수력발전을 위해 건설됐지만, 하류 하천 수질오염 문제로 사용이 중단된 도암댐을 재활용하는 방안 등도 검토되고 있지만 당장의 가뭄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다.
강릉시 관계자는 “샤워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효과가 가장 큰 만큼 꼭 실천해달라”며 “밸브 잠금이라든가 허드렛물 재이용을 해주시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