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 역대 세 번째 '1000승 감독'이 탄생했다. 한화 이글스 김경문(67) 감독이다.
김 감독은 지난 1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전 홈 경기를 2-0 승리로 이끌면서 감독 통산 1000번째 승리를 거뒀다. 2004년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해 처음 프로 사령탑에 오른 김 감독은 21년간 통산 1894경기에서 34번의 무승부와 860번의 패전을 경험한 끝에 통산 1000승 고지에 올라섰다. KBO리그 감독 1000승은 김응용(1554승 68무 1288패) 감독과 김성근(1388승 60무 1203패) 감독의 뒤를 잇는 역대 세 번째 대기록이다.
김 감독은 두산 유니폼을 입고 '명장'의 반열로 향하는 초석을 다졌다. 45세였던 2004년 4월 5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서 감독 데뷔 첫 승을 따낸 뒤 '화수분 야구'라는 두산의 팀 컬러를 확실하게 정립했다. 2011년 6월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까지 7시즌 반 동안 팀을 세 차례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정규시즌 960경기를 지휘하면서 1000승의 절반이 넘는 512승을 쌓아 올렸다. 두산 감독 시절이던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대표팀 감독을 맡아 9전 전승 금메달을 일구기도 했다.
김 감독은 또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주춧돌을 놓고 단단한 탑까지 쌓아 올린 '개척자'였다. 2011년 8월 신생팀 NC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1군 진입 2년 만인 2014년 팀을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려놓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NC는 그해부터 4년 연속 가을 야구를 했고, 2016년엔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김 감독은 2018년 6월 NC 감독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384승을 더 했다. 당시 통산 성적은 1700경기 896승 30무 774패. 개인 통산 900승에 4승만을 남겨 놓은 시점이었다.
그 후 6년간 멈춰 있던 김 감독의 승리 시계는 지난해 6월부터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한화는 중도 퇴진한 최원호 전 감독의 후임으로 야인이던 김 감독을 선택했다. 좌충우돌하던 '만년 하위권' 팀 한화에 백전노장의 경험과 무게감을 수혈했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 남아 있던 87경기를 42승 1무 44패로 마무리한 뒤 본격적으로 팀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올해 한화는 정규시즌 우승을 노리는 강팀으로 변모했다.
김 감독의 통산 1000번째 승리도 상징적이었다. 올해 KBO리그 최고 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에이스 코디 폰세가 7이닝 9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고, 김 감독이 발굴한 젊은 마무리 투수 김서현이 최근 부진을 털어내는 무실점 호투로 승리를 지켜냈다. 경기 후 한화 감독실 벽은 1000승 축하 메시지가 담긴 풍선으로 뒤덮였다. 코치들은 김 감독에게 구단이 준비한 1000승 기념 트로피를 전달했고, 한화 주장 채은성과 간판 투수 류현진은 꽃다발과 1000승 기념구를 선물했다.
김 감독은 "다시 (감독) 기회를 주신 구단주와 많은 것을 지원해 주신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함께 올 시즌을 열심히 준비해준 코치들과 현장 스태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워준 선수들에게도 고맙다. 이 기쁨과 영광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잔치'는 길지 않았다. 김 감독은 이내 웃음을 지우고 다시 고삐를 조였다. 그는 "나 개인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기록이지만, 지금은 감독에게 포커스를 맞출 때가 아니다"라며 "순위 싸움이 한창이고, 매 경기 1승, 1승이 정말 중요한 시기 아닌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우리 팀 경기를 잘 치르는 데만 집중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설' 이전에 '현역' 감독으로서의 굳은 의지가 담긴 일성이었다.
한편 한화 구단주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3일 김 감독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 "통산 1000승 금자탑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최고 명장의 리더십이 이글스의 새로운 역사와 함께 영원한 전설로 기억되길 기원한다"고 격려했다. 평소 야구장을 자주(지난해 9회, 올해 5회) 찾아 한화 구단에 애정을 표현해 온 김 회장은 김 감독을 위한 기념 선물과 축하 화환도 함께 보냈다.